나는 같은 동(00구 00동)에서만 30년 가까이 살고 있다. 2019년 즈음 같은 동네에서만 몇 십년을 산다는 것이 지겹고 갑갑하게 느껴졌다. 직장도, 친정도, 교회도.. 내 대부분의 동선은 00동 안에 한정되어있으니까.
갑갑함이 절정에 있었을 때 남편에게 이사를 제안했고, 남편도 좋다고 했다.
남편은 결혼하기 전에 강남구, 관악구, 종로구 등에서 자취를 하며 딱히 어느 한 곳에 적을 두고 살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에 살든 상관없다고 했다. 우리는 형편에 맞는 서울의 일부지역과 용인쪽으로 집을 보러다녔다. 그 해 3월~6월까지는 거의 매주 집을 보러 다녔던 것 같다.
이사를 가면 삶의 터전을 옮기는거라 당시 아이들의 어린이집과 내 직장을 옮겨야 하는 것, 친정과 멀어지기에 독박육아로 독립해야하는 나의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그 모든 결단을 가능하게 할 만한 집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남편도 마찬가지. 용인쪽으로 가면 브랜드아파트에 넓은 평형으로 갈 수 있지만 출퇴근시간이 배로 걸리고, 서울로 가면 살던 집을 전세놓고 전세로 갈 생각이었는데 전셋집의 컨디션이라는 게 막상 살려고 보니 썩 마음에 들지 않고, 경사가 많고 높아서 애들데리고 다니는 것도 그렇지만 일단 내가 다니기가...
그러다보니 구관이 명관인가 싶고.
그 즈음 내놓았던 우리 집도 보러 온다는 사람도 없었고, 매주 애들끌고 집보러 다니는 게 슬슬 귀찮아졌고 날씨도 더워져서 이사생각을 잠시 거두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를 알아봐주는 집이 나올 때까지.
그렇게 몇 달을 보내던 어느 금요일 밤, 여느 때보다 발랄하고 패기넘치는 아이들의 에너지를 실감하다가 남편의 입에서
"아오, 좁아. 답답해 못살겠네."
라는 말이 나오거야 만 것이다.
매주 서울로 용인으로 집 보러다니는게 힘에 부쳤던 날, 집에 오면서 네이버부동산 매물을 보다가 남편에게
이사에 대한 전투력이 사라져 내놨던 집도 다시 거둬들이고 몇 달 이사는 잊은 채 살던 중 갑자기 집이 좁아서 못살겠다는 남편에게
"00아파트라도 가자고!!"
라고 말했다. 00아파트는 이름이 좀 구식이라 우리가 살던 집과 같은 입지인데도 몇 천은 싼 곳이었다.
"아.. 그럴까? 내일 가볼까?"
"토요일은 격주로 여는 것 같던데. 내일 문 여는지 전화해봐."
금요일 밤 10시가 넘어가던 시점이라 아이들 씻기고 재우고, 재우다가 잠들었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의 통화소리에 잠이 깼다.
"네네, 지금 당장이라도 가야죠. 12시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2시에 부동산 가기로 했어!!"
일어났냐고 묻지도 않고 일정 브리핑중이시다.
12시에 부동산으로 가서 사장님과 인사 후 바로 집을 보러 갔다. 한 집은 완전.. 사장님도 이런 집은 처음보신다며 94년? 95년? 당시 분양할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집이었다. 바닥도 싱크대 상하부장도 샷시도 화장실도 옛것 그대로, 완전 레트로. 집주인분은 지방에 사시고 아드님 혼자 작은 방을 사용하고 계신 집이라 집을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다음은 완전 특올수리되어있는 집이었다. 지하실에 있다가 궁전에 들어선 것 같이 블랙&화이트로 깔끔하게 수리되어 완전 밝고, 주방의 수도위치도 바꾸고 작은 방 베란다도 확장해서 방금 본 집과 같은 타입의 집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래서 부동산에서 "개별성"이 중요한거구나 생각했다. 같은 층 같은 뷰여도 가격이 3천만원정도 차이났다.
집을 본 뒤 부동산 사장님께 우리 집도 다시 내놓고 다른 집 또 나오면 연락달라고 말씀드린 뒤 남편은 애들을 데리고 집으로 갔고, 나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서 약속장소로 향했다. 가기 전 우리 집값을 정해야 하는데..
"사장님 집은 3억8천에 하시죠."
"네? 5월 달쯤 팔려고 할 때 3억6천 얘기했었는데."
"지금 딱 철이에요. 괜찮아요. 7천5백까지 해볼게요."
가능할까 싶었다. 저 작은 집을 4억가까이에 누가 사려나..
친구들과 모처럼 애들 없이 분위기좋은 곳에서 식사를 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내가 친구한테 물었다.
"너 우리 집 4억에 살래?"
"겁나 동공지진+눈으로 욕."
"3억8천에 내놨는데 아무래도 미친거겠지?"
"또 내놨어?(웃음) 그래도 살 사람은 사던데."
"너라면 안 살거지?"
"응. 정중히 사양할게. 나 집 있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유와 웃음이 끊이지 않던 대화에 남편의 전화가 끼어들었다. 내가 나가 있으면 전화안하는 사람이긴 한데, 친구애까지 봐주고 있어서 조심스럽나. 아오, 애들 난리치니 빨리 들어오라는건가...
"왜 전화하신거죠?"
"방금 신혼부부가 집 보고갔거든."
"어."
"우리 집 사겠데."
"그래? 그럼 팔어!"
"그럼 우린 어떡해?"
"아침에 본거.. 그 똥구린집 사."
"그 집 사라고?"
"사장님은 뭐래?"
"안그래도 물어봤는데, 옆동은 저층인데 앞자리가 다르고 협상여지도 없고 기다리면 매물이 나올 수도 있는데 가격이 여기같진 않을거라고 하시긴했어."
"맞어, 나도 그런 것 같애."
늘 부동산사이트를 들락날락했기 때문에 가격흐름은 알고 있었다.
"그럼 계약서 써야하니까 들어와야되는데."
"나 들어오라고?"
"그럼 애 셋 데리고 부동산 가?"
"하아... 그럼 그 커플 밥먹고 오후에 보자고 해. 빨리 먹고 갈게."
일이 이렇게 되어 느낌이 미화되는지도 모르겠으나 처음 그 레트로집에 들어갔을 때
'여긴가? 집이 왜 이리 좋아?' 하는 느낌이 있었다.
집이 나를 알아본다는 느낌이 이건가
수리된 집이 훨씬 매력적이긴 했지만 그 집에선 내 맘대로 뭘 바꿀 수가 있겠나 하는 기분이었다. 방3화2이니 평생 살 지도 모르는데, 날 것 그대로 관능을 뿜는 첫 집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긴 했었다.
우리 집을 사겠다는 신혼부부는 뭔 재력이 있어 이 작은 집을 이 값에 사는걸까 싶었지만 절대망고의 진리 "내가 제일 가난해"
내 걱정만 하면 되는 거시다(후에 이 집은 2년이 채 안되어 7억을 찍었다). 해서 우리는 우리 집을 팔고 이사갈 집을 사는 두 가지 계약을 토요일 저녁에 마무리해버렸다.
엄마한테 이 상황을 전했더니
"집을 사? 지금? 너 이사가려고 했어?"
"했지. 나 계속 집 보러다녔잖아."
엄마는 내가 3월부터 몇 개월간 집 보러다니는 걸 알고 계셨고 간혹 평일에 가야할 때는 아이를 저녁까지 봐주시기도 했다. 갑작스런 소식에 좀, 아니 많이 당황하신듯 했다.
"그랬지. 그치. 근데 샀어? 토요일인데? 지금 밤 아니니?"
"어 도장찍고 나왔더니 밤이 됐네."
"도장찍었어? 너 도장있어?"
"엄마ㅋㅋㅋㅋ 정신차려ㅋㅋㅋㅋ"
"정신있지. 어머. 너 그동안 나 속였니?"
"??? 뭘 속여. 오늘 아침에 봤는데 맘에 들었거든. 마침 우리 집도 팔려서. 타이밍이 잘 맞았네."
"어머, 얘.. 마트에 가서 계란을 사도 그렇게 안 사. 미쳤어, 얘가. 근데 다행이다. 이사해야지. 그린이 초등학교 가는데. 김서방 수고했다고 전해라. 그래, 맘에 들면 딱 사야지. 얘는 진짜...(잠시 혼잣말)김서방 애썼네."
"애는 내가 썼거든."
"장하다야. 기분 좋다. 아이고. 등기부는 깨끗한 집이야? 모르겠다. 날 밝으면 또 통화하자."
이때가 2019년 11월이었고, 주담대가 40%까지 가능한데 KB시세보다 2천만원 낮은 가격에 사서 단 800만원이라도 더 대출받을 수 있었고, 그때만 해도 주담대실행일 -32일까지 주담대액수와 상관없이 마통실행이 가능했다. 그래서 남편의 연봉만큼 마통을 터놓을 수 있었다.
주담대와 마통정도로, 원래는 청약담보대출과 보험약관대출까지 다 알아 본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잔금과 취득세와 복비와 법무사비 그리고 인테리어비용까지 다 감당해냈다!
우리는 뼈대만 남기고 3200만원정도 들여(보통 평당100잡으라고 하더라) 올수리를 한 뒤 다음 해 2월 중순에 입주했다.
ㅋㄹㄴ가 터진 것이 1월말이었으니 정말정말 베리베리베스트나이스타이밍이었다. 6개월 뒤 같은 단지로 이사온 친구는 앞자리가 바뀐 금액으로 매수했고, ㅋㄹㄴ 첫 해 연말을 기점으로 우리 집값은 앞자리 하나를 건너뛰고 다음 숫자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