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난로를 때지 않아도 집이 따뜻하며(전에 살던 곳은 겨울에 연탄 난로 땠음) 심지어 화장실이 두개.
63빌딩도 아닌데 사람이 사는 집들이 붙어있는 빌딩에 엘리베이터가 다녀.
너무나 신세계인 것.
그런 집에서 20년 가까이 살다가 결혼을 했다.
결혼과 함께전세로 얻은 14평 아파트는 전세가 1억. 우리가 가진(정확히 말해 당시 남친이 가진) 6500만원에 3500만원 대출로 마련했다.
축의금과 당시에 가능했던 퇴직금 중간정산을 몰빵해서 빚을 2년 채 안되어 갚은 후 중고차도 사면서 나름 안정감을 누리며 살다가 슬슬 현타가 오기 시작했던건
집주인이 말없이 집을 내놓고,
게다가 매매로,
집 보러 오겠다는 사람들이 수시로 전화하고 벨을 누를 때,
였다.
이 집은 내가 사는 집이지만 내 집이 아니구나 하는, 거짓말 조금 더 보태 모멸감같은거 느꼈달까.
한 번 정도면 그 집은 그랬었지 했을텐데 그 다음에 이사간 집까지. 집을 또 내놓으셨다.
와. 우리가 들어가기만 하면 집을 내놔.
그래도 그 작은 집에서 애도 둘 낳고 잘 살았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대치의 안정감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집주인의 통보를 받고 쫓겨나듯 나가는 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집을 사기로 했다. 홧김에. 일명 시발매매. 맞벌이로 아이 둘을 키우려면 엄마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라 엄마가 사시는 단지로 가기로 했다.
2015년 말~2016년 초에는 일명 초이노믹스 라며 "빚내서 집사라"라는 말이 있었다. 우리는 투자나 재테크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고 그저 세입자인생이 서러우니까 내 집을 사자! 해서 샀다.
이 동네는 다 구축이다. 신축이 없다. 25년 넘은 19평 투룸아파트를 샀다. 전주인이 6년간 산 집이었는데 6년 전에 2억6천에 샀고, 우리한테 2억8천3백에 팔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1억 정도로도 대출을 당겨 이 정도의 집을 살 수 있었다. 2%대의 저금리특수를 누리기도 했고. 이때는 이게 기회였는지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작두를 탄게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내 인생의 베리굿타이밍이었다.
당시 집값의 변화가 미미했으니 내집마련의 기쁨이 있었을 뿐 집이 재테크의 도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재테크'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 같다. 재테크라고 하면 우리는 신혼부부니까 분양을 받아서 그 아파트값이 오르는 것, 혹은 원룸이나 빌라를 사서 월세놓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
더욱 더 그럴 것이 아빠의 일 때문에 2006년에 살던 부모님의 32평짜리 아파트를 급매로 내놓으신 적이 있다. 부동산사장님이 시간이 있으면 5억7천까지도 가능하다는 것을 시간이 없어서 5억에 파셨다. 내가 2012년에 결혼할 때 돈은 없지만 검색이나 해볼까 싶어 그때 살던 단지를 검색했는데 같은 평수의 호가가 4억8천에도 나와있었다. 그러니 집은 돈이 되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여기에 더해 위례신도시에 분양받은, 내가 살았던 단지에 사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15년인가 16년에 잔금치르기 위해 집 팔 때 5억7천 정도에 팔았다. 그러니까 10년간 집값의 추이가 거의 없었던거다. 내 주위에 누구도 집은 사는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내 집에 들어가 살면서 나는 외치며 살기 시작했다. 집을 사라고, 집은 사는거라고, 오를 만한 곳에 사라고. 오를 만한 곳에 사는거라고. 마음도 쉽지 않으니 실천이 쉬울리 없다. 다행히 친구들은 신혼특공, 생애최초특공 등으로 분양에 당첨되어 새 아파트에 입주했거나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친구들 중에 나름 집 빨리 사서 우쭐했는데 첫끗발 개끗발인거 알고 있다.
시드머니, 종잣돈 이라는 개념보다는 우리의 실수요에 따라 움직였더니 좋은 타이밍을 만났고, 흐름에 같이 따라갈 수 있었다. 우리가 살았던 투룸아파트는, 이사한 이듬해에 투기과열지구, 조정지역.. 뭐 이런 것들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집값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3년 반 후에 시세대로 9천을 올려 집을 매도했다.
지금에 와서 3년에 9천? 하면 좀 우스울지 모르나 당시(2016년~2019년) 나에게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적인 충격이었다.
우리 부부는 맞벌이로, 부업까지 하며 3년간 힘들게 힘들게 대출 1억을 갚았는데 집은 그저 우뚝서서 수천만원을 벌고 있었다.
아, 집은 사는거구나.
오를만한 곳에 사는거구나.
우리는 분양받아봤자 중도금은 물론 계약금낼 돈도 없으니 우리는 옮겨가면서 돈을 불려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건 아니고.
집에 화장실이 하나이다보니 너어어어어무 힘들었다. 아직 2살과 4살(후에 5살과 7살이 된)인 아이들은 내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오열을 했고, 기저귀를 뗀 후에는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볼일을 다 보게 하는데도 내가 들어가서 화장실문만 닫으면 갑자기 쉬가 마렵다느니 배가 아프다느니 문을 두드리고 난리난리... 정말 나를 미춰버리게했다. 샤워야 애들 없을 때 한다고 해도 볼 일은 내가 조절할 수가 없잖?
남편은 자기가 안 볼테니까 혹은 나가있을 테니까 문 열고 일보라고...
하아.. 인간아.. 니가 애들을 데리고 나가야지, 애들과 합방하며 응가하라고?
신생아때 애 안고 응가한걸로 충분해 인간아....
내 존엄은 누가 지켜줘요? 언제까지 못지키고 살아야 해요?
집값이 쌌던 시절이라고 해도 후의 일을 아니까 쌌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거지, 집값은 늘 비싸고 늘 미쳐있었다. 그래서 이 집에서 첫째인 딸 아이가 사춘기가 오기 전까지 살자! 하며 집을 샀던 건데 불과 3년만에 우리는 좀 더 넓은 집을 갈구할 수 밖에 없었다. 화장실이 하나 더 필요했고, 생각보다 아이들은 빨리 자랐다. 빨리 자랐다는 게 양육이 수월해졌다는 게 아니라 애들 덩치가 커졌다는 것.
텔레비전, 거실장, 식탁, 책상, 쇼파 등이 없는 집이었는데도 집이 좁아졌고, 어느 금요일 밤 남편의 입에선
"아오 좁아, 답답해 못살겠네."
라는 말이 나왔다. 14평에서도 충분히 평생 살 수 있다던 "돈은 안쓰는 것이다"정신으로 똘똘뭉친 남편에게서 믿을 수 없는 말이 나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