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자가 되고 싶니?

특별한 이유는 없다

by 김호정

돈이 특별한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한 건 IMF이후 부터였던 것 같다. 당시 나는 고1이었는데 뉴스에서 '현대시'라고도 불리웠던 울산의 근로자들 대부분은 실직상태에 이르는 통에 울며 인터뷰했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나고, 우리 아빠도 2달 정도 월급이 안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빠는 대기업을 등에 없고 실직은 피했었고, 그래서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는 없었지만 사람들과 세상의 공기가 달라진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명품', '삼성'.... 이런 말들이 유행어처럼 입에 오르내리고 일부 철없는 선생님 중엔 "우리 남편 삼성다녀" 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도 계시긴 했다. 좋으셨겠다.


불황이 닥칠수록 부자에 대한 열망은 더 커지나보다. 시장을 이기고 불황을 이기는 부자. 부자가 되면 세월이 봄 같든 겨울 같든 한결같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부자가 되고 싶나.


은수저는 물고 태어났던 것 같은데 이렇게 저렇게 수저가 녹슬다가 수저를 잃어버린 뒤 결혼을 했고 냉엄한 현실에 던져진 우리는 하우스푸어, 베이비푸어, 카푸어 등 3종 푸어세트를 초고속으로 달성하며 고군분투하던 중에 악덕... 까진 아니었지만 어쨌든 생계형 주인님들이 우리가 전세 들어가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 집을 팔아버리는 바람에 서러워서 홧김에 샀던 집이 우리 부부에게 큰 경제레슨을 해주었다.


ㄴ>저의 간단한 인생이야기ㅋㅋㅋ


근로 노동이 중요한 만큼 투자 마인드와 지식, 실천도 필요하다는 것을 집느님은 친절하고 따뜻하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남의 아들은

돈은 피땀으로 버는거야.


-_-


제발 피땀같은 소리 그만 해!!!!


물론 좋게 말했던 때도 있었지만 반복되는 피땀은 점점 거칠어져서 진짜 피땀날뻔 했는데, 다행히 지금은 피땀 안 흘리고 의사소통하고 있습니다-_-


집이 있다는 것은 좋고 편한 것이구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구나. 인생의 큰 걱정 하나를 마무리 한 것이니 이외의 걱정은 사실 '주거생활'의 무게만큼 크진 않다. 그런 안락함이 더 부자의 꿈을 키우는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부자는 철학적인 부자가 아니라 그냥 '부자'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그 부자를 말한다. 그러니까 돈이 많은 사람. 김승호회장의 <돈의 속성>을 인용하겠다.


우리 부부는 저 세가지 부자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경제자유획득 3개년 계획을 세웠다. 3차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100억대 부자가 될거야"라는 추상적인 목표보다는 성취할 수 있는 단기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일단 앞으로 3개년은 "대출상환"을 목표로 삼았다. 그 목표를 세우려면 남편월급과 내 월급의 70%를 안써야 한다. 불가능같지만 일단 목표는 심하게 세워본다.



돈이 많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라는데 굳이 왜 돈 많은 부자를 꿈꾸나.


돈이 많으면 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까,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좀 더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니까... 등의 '돈 많은 사람의 생활'이라고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을 다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수저없이 신혼을 시작한 우리가 부자가 된다면 이 나라가 아직 민주주의, 자본주의국가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근거 혹은 예시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시대적 모델(?)이 되고픈 깜찍한 야망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기저에는 샤넬가방을 고민없이 사고 싶은 허세스멜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말이 샤넬이지 카드지갑같은 초소형이라도 사려면 후덜덜... 샤넬은 구두도 예쁘더라.

내가 살아있는 동안 기회가 온다면 쫄지 않고 샤넬매장에 입장한다-쫄지 않고 모델명을 말한다(아니면 보기에 예뻐보이는 걸 보여달라고 요구한다)-쫄지않고 시착해보겠다고 말한다-쫄지않고 다른 것도 요구한다-쫄지않고 맘에 드는 걸 고른다-쫄지 않고 고민말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낸다-쫄지않고 결제한다-쫄지않고 상품권 행사하면 연락달라고 말한다- 쫄지않고 동공지진나지 않고 말더듬지 않고 손떨지말고 인사까지 야무지게 하고 앞을 보고 직립보행으로 매장문을 열고 나온다- 나와서도 다리풀려 주저앉지 않는다.


이런 행동을 해보고 싶다. 물론 이런 것은 찰나의 행복을 줄 수 있지만 행복을 지속하는 힘은 또 다른데서 온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다.



하지만 찰나일지라도 누려보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돈이 없어도 능동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려고 노력했던 풋풋함은 이제 없어서일까. 행복하기 위해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인간이 누리려는 최고의 것이 '행복' 혹은 '안정'뿐일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도 충분히 느껴지듯이 행복이나 안정만으로는 우리의 인생이 채워지지 않는다. 노력도 고생도 다 필요한거지. 누구의 인생이나 쉽지 않을텐데, 그 '쉽지 않음'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인생의 일이라면 누가 쉽게 '쉽지 않음'을 극복할 수 있을까.

멘탈이 강력크한 사람의 극복이 더 가치있는 극복이겠지만 결국 가난하지 않은 사람의 극복스토리들이 더 능동적이지 않을까 싶다. 쉽지 않은 삶의 태세에서도 조금 유연할 수 있을 것 같고.



왜 부자가 되고 싶나?

생각보다 힘든 것은 생각보다 자주 경험하고 산다. 생각보다 행복한 것을 생각보다 자주 경험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40-50대의 삶은 녹록치 않다고들 한다. 뭔가 과제같은 일들이 산적해있는데 딱히 검사맡을 사람도 없고 하지만 하긴 해야겠는 것들이 내 앞에 버티고들 서 있는 느낌. 왜 해야하는 지, 뭘 그렇게 열심히 해야하는 지 모르겠지만 뭔가를 열심히 하긴 해야하는 시기, 그 시기가 40-50대인 것 같다.


녹록치 않은 삶이라면 삶의 이유를, 삶의 목표를 부자가 되는 것에 꽂아놓으면 조금은 활력이 생기는 것 같다. IMF때 고1이던 나는 내가 40살 보다 더 많은 나이를 살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고, 40이 넘어 다시 떠올려보는 고1은 생각보다 가까운 과거다.


내가 상상하는 노년은 오래 될 미래지만 노년이 된 내가 다시 떠올리는 지금은 너무 가까울 것이다. 잡힐듯한 미래와 현재 사이의 나는 되도록이면 다행인 미래를 갖고 싶다. 물론 인생이 노력과 상관없이 흘러갈 수도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흘러가게 냅두는 것과 흘러가는 것을 보고있는 것은 다른 것이니까, 되도록이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러니까 부자가 되는 쪽으로, 여유가 있는 쪽으로, 벼락거지가 되지 않는 쪽으로 흘러가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잔인했던 4월의 마지막 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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