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좋아하지만 전세특약은 확실하게

죄송하지만 안되겠습니다

by 김호정

전국이 부동산과 주식으로 시끌시끌하다. 쥐고 있을 현금도 없지만 그 만한 현금이라도 쥐고만 있으면 벼락거지된다고 한다. 사실 지금까지 집을 사고 3년 살고, 기분 좋게 오른 만큼 기분 좋게 팔고, 초큼 넓힌 집을 사고, 지금 집에 이사한 지 만 1년 되었을 때 얘기다.


근로 노동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투자'라고 했다. 즐겨보는 유튜브채널의 조언(?)에 따라 천지개벽할거라는 동네를 남편과 아이들과 둘러보러 다녔다. 전문용어로 '임장'이라고들 하더라고요. 집에서 너무 먼 곳은 빼고 우리가 오가기 편한 곳, 그래서 적당한 정보를 얻기 쉬운 곳으로 해서 서너 군데를 돌아보고 남편과 내 마음에 들었던 동네를 골라 적당한 아파트를 매수했다.


부동산 사장님을 잘 만나서 공시지가 1억 미만의 집을 만났고, 주인 분도 좋은 분이라 조금 깎아주셔서 우리의 예산보다 적은 금액으로 계약을 진행했다.


남은 것은 세입자님을 모셔야 하는 일.


세입자로 살기만 했지 세입자님을 모시는 것은 처음이라 긴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 살자고 사는 집은 그런가보다 하고 살면 되는데, 내 집에 다른 사람을 살게 한다고 생각하니

'혹시나 노부부가 오셔서 매일 청국장끓여드시는 바람에 집에 냄새 베면 어떡하지.'

'독거청년이나 독거중년이 혹시나 흡연을 하시면...'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들이 둥실둥실 뭉게뭉게 떠다녔다.

부동산 사장님께 다른 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반려동물 키우시는 분은 모시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렸다.



잔금날짜가 2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부동산에서 이렇다 할 연락이 없어 신경이 쓰였다. 남편도 퇴근 후 부동산에 가서 좀 신경써달라, 요즘은 분위기가 어떠냐 등등 부탁인지 공손한 협박인지를 하고 왔고, 나도 매일 부동산어플을 열어 전세매물이 많나 검색을 해댔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을 하겠다는 분들이 나타났고 계약하러 가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서로 도장을 찍는 와중에 남편이 말했다.

"반려동물은 안키우실거죠? 계약서좀..(특약 확인하기 위함)"

"어?"

갑자기 세입자님들(자매였다) 얼굴이 하예졌다.

"맞어. 사장님이 애완동물 안된댔지. 왜요, 무슨 문제있어요?"

사장님이 계약서에 수기로 '애완동물불가'라고 쓰시고 도장을 찍으며 말씀하셨다.

"저희 고양이 키우려고 했는데. 그걸 지금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무슨 아파트에서 고양이를 키워요, 내가 대신 키워줄 수도 없고. 지금 도장 다 찍었는데 어떡해. 계약금 배로 물어야되요."



어안이 벙벙해지는건 우리도 마찬가지였지만 상대방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계약 시간을 잡을 때 세입자님들이 저녁 8시 전에는 안된다고 해서 늦은 시간에 진행했던 계약이라 시간이 9시30분을 넘어 10시로 가고있는 상황이라 뭘 더 얘기해보고 어쩌고 할 시간이 없었다. 도장은 찍고 계약금은 왔지만 뭐가 정리가 안된 것 같은 상태에서 세입자님들은 그쪽 중개사분과 자리를 뜨시고(공동중개였다) 우리는 우리대로 멍한 채 인사를 했다.


"사장님, 미리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저쪽 완전히 놀란 것 같은데 어떡해요?"

"에이, 계약파기하면 배액배상이에요. 전세집에서 무슨 고양이야. 괜찮을거에요."

워낙 목소리도 크시고 시원시원하신 분이었다. 괜찮을까 싶었지만 오히려 걱정해주는게 초보인 거 티난다고 하셨다.

다음 날.


세입자님에게 전화가 왔다.

법률상담과 구청에도 전화해서 물어보니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특약은 무효라는 답을 받았다며 계약을 없었던 일로 해달라고 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잔금일까지 2달이 채 안남았는데 이거 어쩐담.


일단 고민해보겠다고 전화를 끊고 부동산사장님에게 전화했더니 전세구하는 사람은 많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전세구하는 사람이 많은데 왜 우리집은 이제야 계약이 된건가요, 묻고 싶었지만 말았다.

고양이가 벽이나 문을 긁고 다닌다는 말을 들은터라 계약을 유지하고 퇴거할 때 망가진 부분에 대한 원상복구를 해놓겠다는 약속을 한다고 해도 사실 망가진 부분이 누구의 소행인지를 밝히는게 어렵고, 사실 그 집에 우리가 들어가 살 게 아니니까 집을 계속 세 놓을거라면 세입자님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별 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 한편으론 세를 놓을거니까 집을 좀 깨끗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보통 계약할 때도 신혼부부인지, 아이가 있는지, 혼자 사는지 등 가족형태를 확인하는 것은 실례가 아니니까 반려동물의 가불가를 결정하는 것도 실례는 아닐 것이다.


세입자님은 동물을 싫어하냐고 물었다. 엄청 좋아한다. 남편은 길냥이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여행지의 식당에서 키우는 믹스견을 보면 너무 귀엽다며 어떻게 할 줄을 모른다. 걔들은 씻지도 않을텐데 막 쓰다듬고 만지고 난리가 난다. (물론 손을 비누로 10번가까이 씻는다! 냄새가 빠질때까지!) 좋아하는거랑 같이 살며 키우는거랑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연애와 결혼이 천지.. 우주차이 이듯이.




세입자님은 고양이를 키우겠다는 결심이 확고했고 우리는 반려동물은 안된다는 결심이 확고했으므로 조건없이 계약을 철회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늦은 시간까지 골머리 썩느라 우리도 사장님도 심난했는데 일단 계약철회로 결정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냥 어거지로 밀어부쳤다가 세입자님들이 몰래 키울 수도 있는거고, 우리도 임대하는 기간동안 맘이 편치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엄청 다행스럽게 바로 다음날 신혼부부가 계약을 하겠다고 해서 또 신나게 부동산에 다녀왔다. 연속 이틀을 가다니. 기분이야 완전 홀가분했지만 집주인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싶었다.


드디어 잔금날.


세입자님들 모시는 데에는 전주인의 역할도 컸다. 사실 제일 컸다. 집 보러간다고 할 때마다 문을 열어주셨을테니. 나도 집 팔아봤지만 집 보러 온다고 하면 대충보든 꼼꼼하게 보든 되게 신경쓰이는 일이다. 감염병으로 시절도 흉흉한데 집 보여주시느라 너무 감사했다고 인사드리는데 주인분(여자)이 표정이 너무 안좋으시다.


"결혼하기 전에 자력으로 산 집이라서 이 집에 애착이 너무 커서 팔기 싫었는데.. 하아.. 사실 지금도 기분이 너무 안좋아요."

기분이 안 좋으실 수도 있다. 우리가 그 집을 계약하고 잔금하는 날짜 사이에도 꽤 올랐다. 부동산사장님이 얼어붙은 분위기에 균열을 내주셨다.

"어? 근데 그 좋은 걸 왜 내놓으셨데..?"

"저기 0000아파트가 되가지고..."

"네??? 대박이네!!! 거기 됐는데 뭐 기분이 안좋데요!! 근데 거기 어떻게..? 유주택잔데 되신거야?"

"네 추첨으로."

추첨이라면 큰 평수. 우리는 물개박수를 치며 진심 부러워했고 딱딱했던 주인분 얼굴에도 희미한 미소가 돋았다. 주인분이 가시는 아파트는 그 지역의 완전 대장아파트다.

아, 우리 기운이 좋은 집을 샀구나. 너무 다행이고 감사했다.


우여곡절끝에 아파트를 매수하고 세입자분들을 모셨다. 잘 사셨으면 좋겠다. 이사를 가신다고 하면 잘 되서 가시길 바라고.


이런 반려동물이면 괜찮을까


+


세입자와 계약을 하고 얼마 후에 집에 법원등기가 와서 식겁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것 같은)데 법원등기라니 이게 무슨 일이지 싶어서 막 검색을 해봤는데, 세입자 전세대출에 동의한다는 서류였다. 왜 은행에서 안오고 법원에서 오는거죠? 법원등기 도착예정이라는 카톡받고나서 부터 간담이 서늘했던 기억은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있다. 집주인 되는 길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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