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에서 남편과 아주버님이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영어로 번역했다. 번역본과 아주버님의 그림 몇 점을 들고 출판사에 가서 출판을 의뢰했다. 두 세군데 퇴짜를 맞았지만 괜찮았다. 내가 이렇게 퇴짜를 맞고 다녀도 포기하지 않을 용기는 충분히 있었다. 남편과 아주버님의 흔적은 충분히 가치 있다는 걸 난 믿으니까.
몇 번의 의뢰 끝에 출판을 해주겠다는 출판사를 만나 계약을 진행했다. 얼마 후 제본 된 책을 들고 그림을 팔았던 몽마르트의 화랑으로 찾아갔다. 내가 팔았던 아주버님의 그림 중에는 아직 남아 있는 것도 있었다. 사장님께 책을 드리며 이런 스토리가 있는 그림이니 고객에게 잘 알려 좋은 값에 파시라고 말씀드렸다. 아주버님의 그림을 다시 모아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먼저 간 남편과 아주버님에 대한 내 마지막 인사라도 예의를 지켜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버님의 그림이 알려지고 아주버님의 글이 읽혀져서 나처럼 원망과 후회의 날들이 덜하기 바라는 마음이었다.
사장님은 읽어 보마 하시며 네덜란드 미술계 사람들과 다리를 놓아주셨다. 그이 덕분에 나는 네덜란드 미술계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고, 네덜란드에서 아주버님의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규모는 도시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아주버님이 살아계실 때 제대로 한 적이 없는 전시회였기에 작든 크든 기회가 생기는 대로 전시회를 열었다.
한창 전시회를 통해 네덜란드에 아주버님의 이름을 알리고 있을 무렵 남편과 아주버님이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이 출판되었다.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 영어로 된 책이 동시에 발간되자 아주버님과 테오는 물론, 나까지 화제가 되었고 아주버님의 그림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 후로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기회도 점점 많아졌고 내가 나서지 않아도 도와주시는 분들 역시 많아졌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아주버님의 그림은 연일 최고가를 경신했고, 덕분에 우리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렇게 돈을 벌수록 마음은 더 괴로워졌다. 이 모든 일을 테오와 아주버님이 살아서 누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테오와 아주버님을 원망과 억측 속에 가두지 않았을 텐데. 아버님도 그렇게 아주버님을 내치지 않으셨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