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의 방에 있던 종이뭉치는 편지인지 연애 때도 본 적이 없는 남편의 글씨인가 싶은 것들이 가득했다. 남편을 추억해보고자 종이뭉치를 들고 오베르로 가는 기차를 탔다. 아주버님의 유품을 정리하라며 라부 여인숙에서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죽어서도 귀찮게 하는 사람.
오베르로 가는 기차에서 종이뭉치들을 꺼내 보았다. 아주버님이 남편에게 쓴 편지들이었다. 아주버님은 남편에게 보내는 그림마다 편지도 함께 보냈었나보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한 중에도 남편에게 영혼이라도 주겠다는 말이 쓰여있다. 남편과 아주버님과의 관계는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나보다. 나와 남편이 결혼하기 훨씬 전에도 주고받았던 편지들도 많았다. 서로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하고, 미안함도 가득하다. 이 편지들을 테오만 읽으라고 보낸 게 맞는 걸까.
몰랐다. 아주버님에 대해서. 모르겠다. 아주버님은 대체 어떤 분이셨던건지. 슬펐다. 가슴 깊은 곳부터 슬픔이 넘칠 듯이 차오른다. 기차의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흐릿해진다.
아주버님에게서 소포가 오면 보물 숨기듯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았던 남편을 그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림을 뭘 그렇게 오래 보나 싶었는데, 저 방에 불이나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모든 것이 죄송하고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남편과 내가 아주버님에 대해, 아주버님의 그림에 대해 몇 마디만 진지하게 나눴어도 이렇게 허망하게 이별하지 않았을 텐데. 온 세상이 슬픔에 잠긴 것 같다. 아니, 온 세상의 슬픔에 내가 잠겼다. 온 세상은 슬픔이다.
이윽고 도착한 라부여인숙에도 아주버님의 흔적이 가득했다. 여기서 2달 남짓 사셨다는데 그림은 70점이 넘는다. 아주버님이 머무르셨던 방에도 종이뭉치가 가득하다. 남편이 보낸 편지들이다. 싸인할 때 빼고는 보기 힘들었던 남편의 글씨. 남편 글씨가 이렇게 생겼구나. 새삼스러웠다. 나를 놔두고 형을 따라 가버린 남편의 마음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인 걸까.
남편도 아주버님도 가버렸지만 남편과 아주버님의 흔적은 오래도록 남아서 나도 내 아들도 이 흔적에 기대어 남은 날들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연을 끊다시피 하고 살고 있는 시댁에도, 반가워 하실지는 모르겠지만 흔적이 있다는 걸 알려 드려야지 싶었다. 이곳에 있던 작품들은 빠짐없이 암스테르담으로 보냈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가기로 했다. 테오와 나의 고향이기도 한 암스테르담으로, 그곳에서 아들과 함께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