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싸이월드가 이어주는 데스티니

무직에서 구직을 거쳐 취직까지

by 김호정

졸업을 했고 무직으로 정확히 1년 7개월을 보냈다. 중간중간 알바를 하긴 했다. 취업으로 연결되는 일은 아니었다. 나는 토익점수도 없고, 인턴 경험도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학점만 좀 괜찮은 대학 졸업장 뿐이었다. 지잡대 주제에 너무 자신감 있었나. 그렇게 살다가 실습을 했었던 복지관에 취업했다. 부모님은 해왔던 공무원 공부를 계속 하라고 하셨지만 공부같은 거 지겹다. 그냥 돈 벌고 싶었다. 티끌 같은 돈이었지만 티끌모아 조금 큰 티끌로 만들고 싶고 그랬다.


복지관에서 하는 사업들 중에 공개 가능한 자료들이나 신입 직원들이 하는 일들을 일기처럼 내 싸이클럽에 올렸는데 그게 아직 학교에 다니는 동기들과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었나보다. 네이트온이나 싸이 방명록을 통해 덕분에 과제하고 산다, 취업 전에 큰 도움 된다, 혹은 난 이 바닥이랑 안 어울리는 것 같다는 등의 인사를 받았다.


일주일의 고비 같은 수요일, 점심 시간 끝나기 10분전.

업무 모드에 들어가기 전에 습관대로 싸이를 열어보았다. 눈에 띄는 이름이 가입되어 있었다. 바로 곽형민. 방명록에 인사말도 있다.


-돼지씨 아니, 호정씨 안녕^^ 좋은 자료들 많네요. 고마워요. 또 봬요^^


아, 이로써 ‘또 봬요’는 그의 습관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또 보긴 뭘 또 봐. 졸업한 게 2년 가까워 오는데. 그래도 반가웠다. 사실 엄청 반갑고 많이 놀랐다. 특별하게 회자되던 사람이 나의 특별한 공간으로 들어 왔다는 것이 내심 자랑스럽기도 했다.

뭘 자랑스러워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마음에 방명록에 바로 댓글을 달았다. 그가 인사말을 적은지 아직 30분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어머, 반가워요. 학교 다니시나봐요. 선배님ㅋㅋ


확인을 누르고 그의 이름을 클릭해서 미니홈피로 가봤다. 대문 사진은 웅장한 성당 같은 것이었고, 폴더는 여러 개 있었지만 내가 볼 수 있는 사진은 엄청난 숲을 찍은 사진 하나 뿐이었다. 아마도 다 일촌 공개인가보다. 그냥 미니홈피 창을 닫고 내 클럽으로 왔더니 그세 댓글이 또 써 있었다.


-아직도 학교 다녀요. 4학년1학기. 내년 여름에는 졸업해야 할 텐데. 도와줘요 졸업선배님^^


싸이에 계속 접속중인가보다. 도와달라니 뭘? 하는 마음으로 쓰여진 댓글을 두 세번씩 읽는 동안 입꼬리가 좀 올라갔었나. 옆 자리 대리님이 뭐 재미있는 거 보냐며 고개를 내 쪽으로 기울이기에 바닥에 깔려있던 한글파일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아무것도 아니지 않긴 했지만. 대리님이 양치하러 나가시길래 다시 싸이를 열어봤더니 일촌 신청이 들어와 있었다. 일촌명은 그닥 창의적이지 않았다.


‘졸업선배 김호정’, ‘그래도 선배 곽형민’.


풋, 웃음이 나왔다. 바로 일촌을 수락하고 그의 미니홈피로 갔다. 활발하게 미니홈피를 관리하는 것 같진 않았다. 스크랩 한 본인이 나온 사진이나 미국에 있는 동안 찍은 사진들이 좀 있었다. 웃긴 표정이나 포즈를 취하며 찍은 사진들을 스크랩해온 걸 보니 밝은 사람인 것 같고, 주도적으로 사진을 찍기 보다는 그냥 찍히는 사람인데 찍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고, 미국에선 친척집에 머물렀는지 ‘사촌동생과 함께’, ‘외삼촌’, ‘고마운 분들’ 정도의 설명이 붙은 사진들은 저택에서 큰 개와 찍었거나 정원에서 바비큐를 먹고 있거나 해서 좀 풍요로운 분위기였다. 우리 대학과는 안맞는 느낌이랄까.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비밀방명록을 남겼다.

-선배님 되게 웃긴 분이시구나. 사진들 잘 봤어요. 너무 많아서 금방 봤네요 큭


확인을 누르고 나는 업무로 들어갔는데 네이트온에 친구 등록 알림이 떴다. 형민이었다. 너무 신기했다. 싸이클럽에서 인사를 하고 일촌을 맺고 네이트온 친구 등록까지 10분도 채 안 걸렸다. 대학 4년을 다니는 동안 안녕하세요 정도의 인사 말고는 해보지 않은 사이인데, 4년을 같이 다닌 동기 중에서도 일촌이 아닌 애들이 수두룩한데, 네이트온은 더 그렇고. 뭔가 기분 좋은 기운, 자꾸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도 모르게.


-점심 먹었어요?

-어머, 안녕하세요. 네 먹었어요.

-인사를 안했네요. 안녕하세요 후배님. 후배님은 직장다녀요?

-네

-아 그럼 일하는 중이겠네?

-네 지금 근무시간이죠

-난 컴퓨터실인데ㅋㅋ 숙제해요ㅋㅋ

-숙제 열심히 해야 졸업할 수 있어요!

-그러게요. 퇴근은 언제해요?

-6시에 하죠.

-칼퇴?

-거의요. 그럼 저 일할게요.

-네 그럼 또 뵈요

-네^^


짧은 대화가 끝났다. 심쿵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심장이 조금은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젠 진짜 업무 모드로 들어간다. 업무 모드로 들어가봤자 이제 취업한 신입에게 조직에서 큰 업무를 주진 않는다. 대신 몸으로 해야 하는 잡무가 많다. 복사, 분류, 서류철 하기, 복사 용지나 사무 용품 등 정리, 간식 거리 채워놓기, 행사 참석자 명단 작성, 초대장 발송 등등. 실습생이 있을 땐 실습생들이 하는데 없을 때는 내가 한다.


머리쓰는 것 보다는 편하다. 일한다고 돌아다니고 있으면 바빠 보이고 뭔가 열심히 하는 것 같은 기분이니까. 근데 기분일 뿐이다. 문제는 속도다. 그렇게 돌아다니는 속도면 빨리 끝내야 하는데 배워서 하는게 아니라 눈치로 하느라 빨리 끝내지 못해서 늘 쿠사리를 먹는다. 그래도 괜찮다. 몸이 느린 걸로 혼나는 거지 머리나쁘다고 혼나는건 아니니까. 사실 실무자 중에 명문대 출신은 거의 없다. 다 비슷비슷하게 모지란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이 조직은 약간의 동정과 연민에서 비롯된 연대감이 있는 집단이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밥 먹고 씻고 텔레비전 보다가 자는게 일반이다. 취업하기 전엔 친구들이랑 수다떨고 싶은 마음에 늘 네이트온에 들어갔지만 이제는 직장 동료들도 네이트온에 있다보니 굳이 들어가고 싶지 않고, 차단을 하면 되는데 매번 차단했다 풀었다 하기도 귀찮았다. 비밀 로그인해도 되는데 그것도 좀 위험할 때가 있어서 퇴근 후에는 아예 로그인을 안하고 지냈다.


근데 이 날은 좀 궁금했다. 비밀 로그인으로 들어가봤다. 형민이 있었다. 순간 약간 심장박동이 빨라졌고, 그냥 로그인을 했다. 행동이 생각을 앞선 것은 단순 노동을 할 때 빼고 처음인 것 같다. 로그인 하자마자 형민이 말을 건다.


이것은 데스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