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싸이일촌& 네이트온 친구& 우리는...
그렇고 그런 사이...?
“10시 넘었는데? 집에서 전화 안 와?”
“27살이잖아. 안와도 될 나이지.”
“아 그런가? 하하하”
전화가 안 온 게 아니다. 무음으로 해놓고 확인하지 않았다.
시원한 가을 밤을 걷는 기분은 청량했다. 키가 이 정도 차이나는 구나, 나는 오늘 6센치 힐을 신었는데.
걸을 때마다 살짝살짝 스치는 팔과 손등의 느낌이 이렇구나.
나의 목소리를 들으려 내 쪽으로 고개를 낮추는 사랑스러움은 정말 사랑스럽구나.
“집에 어떻게 가?”
“버스타고 가려구, 넌?”
“나 사실 미국에 있을 때 친했던 애들이 이쪽에서 만나고 있거든.”
“어머, 정말?”
먼저 스케쥴이 있었는데 일부러 나한테 맞춰준건가 싶어 놀랐고 조금 감동했다.
“아 괜찮아. 뭐 그렇게 친했던 건 아니고.”
“그래두.”
“즐거웠어. 고마웠고.”
“별 말씀. 버스 온다. 나 저거 타고 갈게! 안녕!”
하고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형민이 인사하던 내 손을 잡아 악수하듯 살짝 흔들었다. 살짝 떨렸다. 나는 버스에 탔고 10분쯤 지났을까.
-조심히 들어가. 아마 친구들 만나면 술 마실 것 같아 따로 연락은 못할 듯 해. 또 보자.
역시, 빠지지 않는 ‘또 보자’. 우리가 말을 놔서 ‘또 뵈요’에서 ‘또 보자’로 바뀌었구나.
그냥 여기까지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냥 신기루같은 이벤트였구나.
정말 자료 준게 고마워서 밥을 사준거구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말할 필요도 없는 그런 시간을 보냈구나.
저녁 한 끼 잘 먹었다고 생각해야지.
하며, 이전에 별로였던 소개팅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거라고 내 자신을 위로하며 그 날의 밤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업무 시간동안 네이트온에서 그는 보이지 않았고, 퇴근 후 비밀 로그인 했을 때도 형민은 없었다. 지나간 소개팅을 복기해 보았다. 나는 상대가 괜찮았지만 애프터가 없었던 소개팅들에 대해서. 내 웃음소리가 너무 경박스러웠나, 너무 많이 먹었나, 옷이 별로였나, 난 사실 못 생긴건가. 그래서 난 지금 이러고 있나. 망상인지 공상인지 모를 헛된 상상을 하다가 잠들었다.
새벽1시쯤이었나, 문자소리에 깼다.
형민이었다.
-자냐?
문자 확인을 한 뒤 나는 안도했다. 하지만 너무 졸렸다. 웃음을 머금고 채 깨지 않은 잠을 계속 잤다. 자면서도 웃었던 것 같다.
토요일 아침, 나는 보통 12시전에 잔다고 답을 보냈고, 형민은 계속 일이 생겨 바빴다며 연락을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할 일은 아닌데. 그냥 너랑 내 사이가 아무것도 아닐 뿐.
이어서 문자가 왔다.
-좀 갑작스럽긴 한데 오늘 잠깐 만날까?
-엥? 오늘?
-오늘 밤에 미국에서 외삼촌이 오셔. 나 미국에 있을 때 많이 도와주셨던. 글구 낼 같이 제주도 갔다가 수욜쯤 올거 같아. 그럼 우리 너무 오랫동안 못 보는데.
답을 뭐라고 보내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너랑 나는 원래 오랫동안 못 보고 살던 사인데. 이미 그저께 만났으니 굳이 만나야 한다면 다음 주에 만나도 되는데. 안 만나도 상관없고. 뭐라고 답을 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에 전화가 왔다.
헐.
받아야겠지.
일어난 지 얼마 안되서 목소리 잠겨 있을텐데.
어쨌건 전화를 받았다. 한 톤높여
“여보세요?”
“뭘 여보세요야. 나 인거 알잖아.”
“알지. 웬일?”
“오늘 약속 있어?”
“약속은 없는데.”
“그럼 내가 갈게.”
“어딜?”
“너네 동네.”
“왜?”
“왜냐면.. 꼭 말해야하나?”
“근데 나 지금 그지꼴인데.”
“1시간 반이면 충분해?”
“충분하긴 하지.”
“점심먹자. 어차피 점심먹을거잖아.”
“그래.”
“어디로 가면 돼?”
“신설동역. 내가 역 안으로 가 있을게.”
“그래. 땡큐. 이따 봐. 끊어.”
뭐지 이건.
내 인생에 들어 오려고 준비운동하나.
이 날은 역 근처 돈까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이디야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해서 걸었다. 물어보려고 작정한건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뚫린 입이라고 말이 튀어나왔다.
“넌 날 왜 만나?”
“…….”
대답은 안하고 날 한번 보더니 눈이 마주치자 또 고개를 다시 앞쪽으로 돌리며 풋 하고 웃었다. 사실 나는 형민이 그렇게 풋 하고 웃는 표정을 좋아했다. 그냥 그 웃음에 대답이 다 담긴 것 같기도 하고.
“노력하는거야?”
“무슨 노력?”
“환심을 사기 위한 노력.”
“어? 하하하하하하하. 진짜 너 짱인 것 같아.”
“왜?”
“너 이러면 남자들이 쫄아.”
“쫄았어?”
“조금? 들켰네?”
잠시 침묵이 흘렀고 길거리에 보이는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한낮이어도 가을에 내리는 햇살은 따뜻하고도 시원했고 공기는 청량하고 맑았다.
“나 사실 연애 잘 못해.”
“웃기네.”
“왜?”
“뭘 연애를 못해? 지은 선배랑도 1년 사귀었다며. 니 미니홈피에 임태미? 걔한테서 퍼온 니 사진 겁나 많던데? 걔도 전 여친 아니야? 연애를 못하는데 다 그렇게 오래 만나?”
“나 지금 너한테 혼나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뭐야, 그럼 연애 못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그러니까 나 좀 잘 봐달라고.”
“생각해볼게.”
“반했던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