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싸이월드가 파격적으로 다가왔듯이
싸이월드만 그랬냐, 너도 그랬다.
“반했던 것 같아.”
“같아?”
“아, 진짜 무섭게 그러지 말고.”
“그럼 분위기잡고 다시 해봐.”
“너 이러니까 진짜.”
“진짜 뭐?”
“휴, 잠깐만 나 숨 좀 쉴게.”
“응.”
잠시 형민에게 숨쉴 시간을 주었다. 가을의 맑은 공기와 함께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바빠 보였지만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생기있어 보였다. 간혹 가을 바람에 날려 낙엽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움트려고 하는 꽃봉오리를 보고 있는 것 처럼 설레는 것이었다. 연애를 시작할 때는 그런 것이다. 계절이 가을이건, 시간이 아침이건 일단은 설레고 또 심호흡이 필요한 것이었다.
“진짜 매력이다 너. 완전 압도당하는 느낌. 너무 좋아. 반했어 너한테.”
반한 줄은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갑자기 우리 동네까지 오고 그랬겠지. 나는 주욱 동갑인 남자들만 만났다. 나는 성격이 고분고분한 편은 아니었고, 지금도 그렇고. 좀 주도적이었고 강한 면도 있었다. 드세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직장 생활에서는 전혀 아님). 특히 편한 남자 친구에게는 더 그랬고.
그런 면에 매력을 느껴 내게 다가왔지만 결국 나의 그런 면에 질려 도망가기도 했다.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싶어 하는 남자의 귀여운 욕심을 나는 그냥 즈려밟았고, 그것은 관계를 더 빨리 끝내는 윤활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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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민과 2년을 만났다. 그 사이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했고, 형민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 삼아 알바를 하다가 그냥 알바생일 때 헤어졌다. 2년 동안 나와 형민은 29살이 되었는데 우리의 상황은 29살답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29살다운 모습은 무얼까 싶다. 누구도 될 수 없는 29살다움.
하지만 그 땐 서른을 턱 밑에 두고 있다는 격한 압박감이 있었다. 이미 결혼한 친구도 있었고,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그 친구들과 형민을 비교하거나 그 어떤 압박도 주지 않았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하지만 굳이 내가 아니라도 형민이 무엇인가에 위축되고 주눅 들게 되고 가끔씩 찾아오는 자괴감 같은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듯이.
그러는 와중에 그가 조금씩 멀어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친구 같은 애인으로 나에게 빅재미와 잔재미를 주는 인간 비타민이었기에 적당히 모른 척 하며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그의 옆에 있고 싶었을 만큼 그의 멀어짐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얼버무릴 수 있는 인간 관계는 없다. 특히 이성 관계는 더. 남자인 형민은 어쩌면 이런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을 수도 있지만 의사소통은 적극적으로 하자는 게 나의 신조다.
잘못한 사람이 먼저 손 내미는 것이 아니다. 더 건강한 사람이 손 내미는 것이다.
“왜 멀어지려고 해? 왜 나랑 헤어지고 싶어?”
“너 되게 좋은애인 거 지금도 인정해.”
“나도 알아. 나 좋은 앤데 왜 헤어지고 싶냐고.”
“너를 처음 봤을 때 스파크가 너무 컸어. 불타올랐거든.”
“나도 알아. 근데?”
“너무 확 빠졌는데, 너를 알아갈수록 조금.... 매력이 떨어지더라고.”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 그냥 너는 너야. 나는 나고. 니 매력이 나랑 안 맞는거야.”
“나는 니 매력이랑 맞는데.”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좀 울었다. 매력이 떨어지는데 2년이나 걸렸나. 안 맞는 걸 파악하는데 2년이나 걸렸나. 바보냐. 더 빨리 매력이 떨어지고 더 빨리 안 맞는걸 알았으면 헤어지는 게 쉬웠을까.
우리의 연애, 적어도 나에겐 행복했던 2년 간의 시간은 형민을 질질 끌고 온 2년인가. 눈물을 거두고 최대한 이성적이려고 노력했다. 전혀 다독여주지 않는 형민 때문에 정신은 빨리 차려졌다.
“내가 결혼하자고 조르지 않았잖아? 취업하라고 재촉하지도 않았고. 난 너한테 바라는 게 없는데. 그래도 싫다고 내가…….”
“나한테 바라는 게 없는 너의 자신감이 좀 부담스러워.”
뭐라고? 정신 차리기 무섭게 나는 다시 한 번 또 눈물이 왈칵 났고 눈물을 거둘 때 쯤 그가 말했다.
“친구는 괜찮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