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혀. 당장 대답했다.
“개소리하지 마.”
“싸이 일촌은?”
“당장 끊어.”
“지금은 후회하지 않지만 좀 지나서 내가 다시 받아달라고 하면 너 나한테 뭐라고 할 거야?”
“됐어.”
하며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나의 손가락 욕 때문에 그도 웃고 나도 울면서 웃었다. 우리는 헤어지는 중이었다. 한바탕 웃고 우리는 진짜 헤어졌다. 우린 정말 잘 헤어졌다. 울었고 슬펐지만 웃었고 깨끗하게 헤어지기로 했으니까.
2년을 만났지만 우린 사회 초년생이거나 알바생이거나 학생이었기 때문에 전리품처럼 남아있는 물질적인 추억도 없었다. 매순간 잡고 있었던 손과 손의 느낌. 생각보다 자주였던 입맞춤과 그때의 볼의 느낌 정도만 남아있을 뿐.
잘 헤어졌다고 믿었던 내 믿음은 틀린 것이었다. 잘 헤어지는 건 없다. 잘 헤어지는 것은 안 헤어지는 거다. 헤어지지 않는 거다. 이별은 슬픈 것이다. 이별은 고통이다. 잘 헤어지는 건 없다. 설사 그와 친구가 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우정을 가장한 슬픔일 뿐 친구인 관계 또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연인은 끝까지 연인이었어야 해. 그와 헤어지고 일주일 만에 4킬로그램이 빠지는 기염을 토했다. 물과 죽 밖엔 먹을 수가 없었다. 엄마도 괜찮냐고 물으실 정도.
그와 헤어지는 과정은 싸이월드가 지금까지 밍기적대고 있는 것 만큼 뭐가 번거로웠다. 일단 일촌을 끊어야 했고, 미니홈피 메인에 있는 일촌평도 지우고, 네이트온에서도 차단했다. 미니홈피의 대문 사진도 바꾸고 사진들을 삭제... 아니, 폴더를 비공개로 해두었다. 삭제까지는, 그건 그 때의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좀 심난했던 것은 커플 요금제를 해지해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겁나 웃기지만 그 때는, 그러니까 2G 시대에는 커플끼리 요금제를 하면 요금이 상당히 저렴해서 많은 커플들이 그 요금제를 사용하고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러다가 이별 등의 사건이 일어나서 더 이상 그 요금제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지면 커플 중 한 명이 통신사에 전화를 걸어 커플 요금을 해지하겠다고 얘기해야 한다. 그러면 상담원이 다른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해야 해지가 완료되는 시스템이었다.
헤어진 날은 금요일 밤이었기 때문에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에 상담원의 전화를 받았다. 죽으로 연명하던 3일째 날, 그것도 아침에, 나는 당황했지만 태연한 듯 그 전화를 받아 해지에 동의한다고 하고 전화를 끊은 뒤 또 펑펑 울었다. 이렇게 슬플거면 왜 난 끝까지 형민에게 매달리지 않았을까 후회하면서.
일촌도 내가 먼저 끊었고, 우리만의 폴더도 대문 사진도 내가 먼저 바꿨다. 통신사에 전화도 내가 먼저 할걸, 그랬다면 나는 지금보다 덜 울고 있을까, 덜 슬플까, 덜 후회할까. 나의 몸이 나의 생활이 온 힘 다해 괜찮지 않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지만 입으로는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아야 했으니까.
싸이월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몇 월 며칠까지 방명록이나 쪽지 등을 백업해 놓으라는 공지가 떴다. 설마 없어지겠나 하며 밍기적대는 동안 많은 일촌들과 이웃 블로거들이 네이버로 옮겨갔다. 비급 감성, 비주류를 좋아하는 나는 끝까지 싸이월드에 잔류하겠다는 다짐이었는데 싸이월드에 남아있는 지인들 자체가 없어지다 보니 잔류는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나도 네이버로 옮겨 새 집을 지었고 싸이월드에 남아있던 것들을 백업했다. 그와 헤어진 지 3년 정도 되었을까. 형민은 나의 연애사 중에선 가장 긴 연애였기 때문에 백업하는 미니홈피 방명록은 대개 그의 것이었다. 낯간지러운 멘트들, 날이 선 감정들, 무기력해진 29살의 이야기들…….
우리의 연애는 단 2년이었지만 그는 나의 20대에 가늘고 길게 걸쳐있다. 대학 입학부터 졸업까지 부적응이었던 대학생활, 잠시나 다름없었던 직장 생활, 내 인생 중 가장 보람차고도 바빴던 대학원 생활을 뒤돌아보면 항상 그가 겹쳐져 있다. 싸이월드도 그렇다. 내 20대의 시작부터 30대로 넘어가 나이대가 바뀌고 남자친구가 바뀌고 직업이 바뀌는 모든 상황에 싸이월드가 걸쳐져 있다.
이제 싸이월드가 간다. 가는 것 같다. 가나보다. 싸이월드가 회생한다고 그렇게 싸이월드가 소중했다고 내가 내 돈 주고 도토리를 구입하며 싸이월드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내 20대에 퍼져있는 그가 소중했었다고 이제와서, 내 앞에 나타나 그 때의 그가 아니라며 정말 괜찮은 남자가 되었다고 한들,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내가 아닌걸.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나이지만 분명히 다른 나인걸. 그렇게 나에게 소중했던 형민은, 없다. 없는 것이 자연스러울 만큼 형민은 없다. 없는 것이 당연한 삶을 살고 있다 나는.
그렇게 싸이월드를 보낸다. 시간의 선물일까 망각의 선물일까. 싸이월드가 없어도 내 추억은 아프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