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미니홈피를 뚫고 나온 남자

드디어 쌍둥이 동생 영접

by 김호정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2학년과 3학년을 보냈다. 단타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다.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잘 기억이 안 날 정도의 단타였다. 싸이에 들어가 보면 확인할 수 있을까.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난다. 흔적도 잘 남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좋아한다고 하니까 만났고, 만나 보니 별로라서 헤어졌다. 20대 초반은 그래도 되는 나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젊은 날에 했어야 할 일들을 하며, 웃고 울며 시간을 썼다. 이별과 방황의 눈물보다는 어이없는 웃음이 더 많았던 기억이다. 뭘 해야 할지, 목표가 무엇인지, 무엇을 계획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그냥 그 날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살았다. 지잡대 출신에게는 기대도 별로 없을 것이고, 그런 나에게 나 조차도 별로 기대가 되지 않았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민해도 당시로선 답을 찾을 수 없는 고민이었기에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목표 없이 계획 없이 현재만을 산 대가로 나는 대학 졸업 후 백수로 2년을 보냈다.


내가 백수가 될 줄 몰랐던 대학생 시절, 그 마지막 해. 졸업을 기다리며 막바지 학교 생활을 했다. 실습도 했고 레포트도 많았다. 모든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 동기들과 내 싸이 클럽에 자료들을 모았고 그것들이 토대가 되어 졸업을 허락받을 수 있을 만한 자료를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졸업했다.


그 잘 생겼다는 형민은 내가 마지막 학기를 다니던 시절에 복학했다. 동기 재수생 중 한 명이 형민과 같은 교회에 다니는 친구였다. 어느 날 조모임을 위해 자료들을 들고 약속 장소에 가기 위해 캠퍼스를 뛰어가고 있었다.

“돼지야, 어딜 그렇게 뛰어가!”

“뭐야 넌!”

하고 시간이 늦어 계속 뛰어가려는데 내 백팩을 잡으며 날 세우고는


“야, 여기 선배님한테 인사 똑바로 해야지!”

해서 쳐다본 선배님이라는 분이 바로 형민이었다. 생각과는 조금 다른 외모였다. 형준을 생각하면 더더욱. 찰나의 인상이긴 했지만 D.J DOC의 정재용이 떠올랐다.

뭐야, 잘생겼다며.


“아 안녕하세요. 복학하신거에요?”

“어? 우리 동갑아니에요?

“네. 뭐 그렇긴 한데.”

“동갑이어도 선배님한테는 존댓말 하는 거야, 돼지야.”

“너도 나한테 존댓말 해. 자식아.”

“얘랑 같이 다니지 마세요.”

"그래야겠네요. 이 자식이 동기귀한 줄 모르네."

스타카토처럼 튀겨지는 티키타카가 잠시나마 재미있었다. 하지만 난 지금 늦었다.


“저 가야 돼서.”

“뭔데 바쁜 척이야?”

“4학년이면 바쁘시지. 조심히 가세요. 또 봬요.”

“네, 먼저 갈게요. 갈게!”

하고 뛰어갔어야 했는데 뛰지 못했다. 그냥 좀 빨리 걸었다. 나랑 인사하고는 저 두 남자가 내 뒷 모습을 잠시라도 볼 거라는 생각에 좀 부담스러웠다. 뛰는 돼지는 아무리 예쁘다고 한들 예뻐 보이지 않을 테니.


“또 봬요.” 라는 말이 메아리처럼 마음에 남았다. 정말 또 볼 수 있을까. 조모임 약속 장소였던 강의실에 도착했더니 먼저 온 친구들이 인사 대신 하는 말이 형민 오빠 봤냐는 물음이었다. 형민이 이 날 학교에 나타난 것이 이슈이긴 했었나 보다. 그다지 이슈가 될 만한 외모가 아니던데.


“어 봤어. 영관이랑 같이 있더라.”

“엄청 살쪘더라.”

“그러게. 잘 생긴 거 맞아?”

“제대하고 미국에서 1년 있다 왔데. 미국에서 살찐 거래.”

“미국엔 왜? 우리 학굔 굳이 영어 필요 없는데.”

“그러게. 미국 가보고 싶다. 제주도도 못 가봤는데.”

하며 형민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잠깐 오가고 우리는 조 발표 준비를 했다. 2시간여 모임을 하고 파했다. 각자의 스케쥴대로 헤어졌고 나는 집에 가는 두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지하철 역으로 갔다. 이런저런 잡담들이 오갔지만 나는 ‘또 봬요’의 올가미에 씌여 그 때 그 말을 했던 형민의 표정과 톤을 되새기고 있었다.


외모에서도 목소리에서도 전혀 매력이랄만 한 것이 없었다. 게다가 ‘또 봬요’라는 말은 그냥 ‘안녕’과 같은 의례적인 인사말 아니던가. 설마 나를 또 보자는 뜻으로 ‘또 봬요’라고 했겠나 싶으면서도 내심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잡념에 갇혀 있는 사이 걸음은 지하철 역으로 향했고 나만 서울 방향이라 친구들과 개찰구에서 헤어졌다. 그리고 플랫폼으로 갔는데 오마이갓. 깜짝 놀랐다.


그 당시엔 없었던 표현, ‘심쿵’이라고 하기에 딱 맞는 상황. 플랫폼에 형민이 있었다. 게다가 무심결에 돌린 그의 고개가 날 향하고 있었고, 앉아 있었던 그는 벌떡 일어나며 나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손 흔들어 인사할 만한 사이가 아닌데, 사실 대학 입학 후 처음 본 건데.


“어? 영관이는요?”

“또 뵙네요. 영관이 보고싶어요?”

“아니, 아까 같이 있었잖아요.”

“수업있다고 하더라고요.”

“걔가 수업도 들어간데요?”

“올해부턴 들어 갔다고 하던데요?”

“아 그렇구나. 집이?”

“저는 남대문쪽. 어디에요, 집?”

“저는 신설동이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지금 편한데.”


딱 그 때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 찰나에 나는 지하철을 같이 타고 30분정도는 함께 보낼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을 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고 그는 눈 인사를 하며 한 발 물러서 전화를 받았고 나는 짧은 눈인사를 하고 지하철을 탔다.


마지막 학기라 학교에 가는 날이 단 이틀 뿐이었고, 그 후로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서 형민을 마주친 적은 없었다. 형민인 줄 알았던 적은 있었다. 본관 건물에서 밖으로 나가는데 형민이 벤치에 앉아 있길래 인사를 했더니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당황하는 사이에 자기는 곽형준이라고 했다. 당황한 나는 죄송하다고 했고 형준은 한 두번도 아닌데요 뭘, 하며 웃었다. 형민이 살이 쪘다고 해도 형준과 헷갈릴 정도니 잘 생기긴 한건가보다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