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일러두기2'를 읽으며, 폭력의 반대가 어째서 권력이란 말이냐, 의문이 생긴 분들이 계실 수 있다. 이 주제를 이 필자가 언제쯤 거론하려나, 묻고 싶었을 수도 있다. 우리가, 권력의 이름으로 폭력이 저질러지는 사례를 역사적으로 '너무' 많이 보며 살아온 탓일 게다.
권력의 이름으로 폭력이 저질러지는 사례는, 아닌 게 아니라 인간사회에서 '수시로'라고 말해도 괜찮을 정도로 자주 관찰된다. 스탈린의 반대파 숙청, 박종철 고문치사, 백남기 선생의 죽음 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공권력의 폭력적 행사가 나타난 역사적 사례를 찾아 예시해볼라 치면, 한도끝도 없다.
그래서 폭력은, 말하자면 권력의 어두운 면인 듯 느껴진다. 그러니까 권력과 폭력은 반대가 아니라 동전의 앞뒷면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 그 생각 끝에는 권력과 폭력의 동일시가 있다.
그런데, 아렌트는 '권력과 폭력의 동일시'라는 아이디어에 동의하지 않았다. 유사성이 있을 가능성마저도 없다고 말했다. 아렌트는 그러한 자신의 폭력이론을 책으로 펴냈다. 제목은 <On Violence(폭력에 대하여 혹은 폭력론)>. 문고판 만한 크기에 두께도 얇다. 이 책은 몇 년 뒤 '시민불복종' 주제의 논문 및 다른 논문들과 묶여 <공화국의 위기>라는 책 안에 들어가 재출간된다. 한국에서는 <공화국의 위기>만 구할 수 있다. <On Violence>를 번역한 <폭력의 세기>는 품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첫출간 때와 마찬가지로 <On Violence>를 따로 사서 읽을 수 있다.
'폭력론'의 앞부분에서 아렌트는 서양철학사를 두루 뒤져 폭력예찬자들의 존재감을 환기한다. 이때 여러 인물들이 거명되는데 기자는 마르크스(K. Marx, 1818-1883)와 사르트르(J. P. Sartre, 1905-1980), 두 이론가를 지목해 대조하고자 한다. 서양철학자들에 대해 자세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는 한국인들에게도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상가로,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사상가로 거의 막상막하 대중적 유명세를 보유하는 분들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우리는, 한 학자의 사상에 대하여 '통으로' 동의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한편, '부분으로' 동의하거나 반박할 수도 있다. 한 인간의 사상은 (그가 신이 아닌 이상) 어딘가에는 빈 틈이 있게 마련이니까···. 전면긍정과 부분긍정, 그리고 부분긍정과 부분비판이 우리에게 다 열려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다른 건 몰라도 '폭력예찬'을 주제로 한다면, 마르크스와 사르트르 중에서 누가 과연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할까? 그것을 파헤쳐보기로 한다.
▲ 마르크스와 사르트르 마르크스와 사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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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은 마르크시스트를 자처했던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5)의 입에서 나왔다. 그러나, 아렌트에 따르면, 그건 명백히 반(反)마르크스주의적이다. 관련하여 아렌트는 "폭력이 아니라 옛 사회에 내재한 모순이 종말을 불러일으킨다"라는, 마르크시즘의 기초적 진실이 어째서 빈번히 망각될까, 약간 안타까워한다.
아렌트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 폭력에 일정 정도 거리를 두었다. 공산혁명을 주도한 마르크시스트들도 폭력을 배제하고자 애썼다. 그래서 오히려 같은 편에게까지 개탄의 빌미를 주기도 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르크스 이론체계에서 프롤레타리아독재 관련내용은 비중이 별로 크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시한부로 실행될 것이 예견되는, 엄격히 제한된 개념으로 신중히 제안되었다. 또,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적 적대자에 대한 공격은 대체로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 그룹과 이른바 우파 그룹에서 기획되었으며, 조직적 무장봉기는 군대가 주도했다.
물론 모든 마르크시스트, 또는 모든 좌파들이 비폭력 평화주의자들이어서 폭력을 배격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허나 이론 차원에서 정밀하게 마르크스주의를 뜯어본 사람이라면, 마르크스주의가 폭력과 적정한 거리를 두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렌트의 지적이다.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20세기 초 마르크스주의를 앙리 베르그송(H. Bergson, 1859-1941)의 생철학에 결합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던 조르주 소렐(G. Sorel, 1847-1922)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마르크시즘의 '계급투쟁'을 군대용어로 간주했다. 그러고는 그것을 오늘날의 '총파업' 정도의 폭력으로 풀이하였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총파업은 물론 폭력적 현상이긴 하나, 현대사회에서는 자주 협상카드로 사용되기도 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마르크스를 폭력예찬자로 보기에는 근거가 조금 부족하다.
마르크스가 폭력예찬자가 아니라면, 그럼 사르트르라는 소린가? 실존주의자가 뭐가 아쉬워서(?) 폭력을 예찬했단 말인가? 궁금할 것이다. '폭력론'에서 아렌트는, 사르트르를 폭력예찬자 그룹에 넣는다. 심지어 다른 예찬자들보다 좀 더 나아간 사람으로 본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자신을 재창조하는 것은 (···) 무책임한 폭력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폭력은 아킬레스의 창처럼 그것이 입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간주했다. 마침내 사르트르는 "모든 저개발국가의 원주민들이여 단결하라!"라고 선포하기에 이른다. 아렌트는 이 같은 사르트르의 선포를 "마르크스의 최악의 환상(전세계 노동자여, 궐기하라! Working Men of All Countries, Unite!)"이 확대된, 그러나 정당성은 감소된 버전(version)으로 판단한다.
이 같은 사르트르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의 지은이로 유명한 정신과의사이자 작가인 프란츠 파농(F. Fanon, 1925-1961)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도시에서 폭동이 성공한다면 "그걸 가능하게 만든 무기를 룸펜 프롤레타리아(부랑노동자층)에게서 발견할 것"이라고.
그러면 아렌트는, 사르트르를 비판하고(파농도 한데 묶어), 마르크스를 옹호하는가? 그러기 위해 'On Violence'를 썼는가? 그렇지 않다. 아렌트는 폭력예찬자로서 사르트르를 예시하지만, 그런 의미의 폭력예찬자들이 역사적으로 사르트르 한 명만 존재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마르크스도 사르트르에 비해볼 때 예찬의 정도가 낮았다는 것이지, 폭력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점을 아렌트는 고려한다.
폭력에 관한 이론을 통해 아렌트는 서양의 허다한 석학들이 어째서 폭력예찬자 유사한 입장을 취하게 되었는지를 추적, 탐구한다. 바로 거기에 폭력의 '문제적 지점'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적 지점에 대한 아렌트의 섬세한 추적과 치밀한 탐구 이야기는 다음 번 글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