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묻고, 그리고 아이들을 이끌어준다.
학교에서 교육활동을 꾸려 나가다 보면, 때때로 내가 중심이 되어 어떤 의사결정이나 의견을 수렴해야 할 때, 내가 생각이 정리가 잘 안 될 때가 있다. 어떤 것은 확신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켜서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방향만 맞다면 사실 사소한 결정이 어찌 되든 바른 길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어떻게 되든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어린이들과 함께 사는 교실에서 교사는 긴장하지 않으면 의사결정에서 극대한 힘을 쥐고 살아갈 수 있다. 교육활동의 주인공이자 중심이 되는 아이들의 의견을 무시한다 해도 괜찮을 수 있다. 아이들이 그 속에서 스스로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교사는 긴장하며 살아야 한다. 아이들이 본인들의 삶을 스스로 가꿀 수 없다는 것에 무기력해짐은 곧 자발성과 주체성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활동의 주도권이나 중심을 아이들이 쥐어야 하는 것들에 있어서는 아이들도 의사결정에 당사자로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공동체를 이끌어나가는 나의 신념과 원칙 중 하나지만 옳은 방향성을 위해 교사의 역할과 안내는 있어야만 한다. 물론, 아이들은 천연의 인재들이며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위해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지만 어쩔 수 없이 미성숙한 존재들이다. 해서 그들을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교사는 명징한 철학을 바탕으로 온전하게 이끌어주어야 한다. 아무리 아이들의 자발성과 주체성을 신뢰하고 그러한 교육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목적지로 아이들을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바른 방향을 바라보고 걸어갈 수 있게 돕는 것은 결국 교사의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뇌해야 하는 것이 교사의 일이다. 어디까지가 교사의 안내여야 하고, 어느 지점부터는 아이가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지켜봐주어야 하는 것인지. 그 영역 구분의 어려움이 나에게는, 교사로서는 늘 고뇌의 씨앗이 되곤 한다.
아무튼, 그러한 헷갈림으로 생각이 잘 정리가 되지 않을 때는 동료 선생님들과 생각을 나누기도 하지만, 결국 해답은 아이들에게서 얻는다. 그러려면 동등한 위치에서 아이들에게 묻고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 물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실마리를 주고 또 올바른 고민거리를 안겨주어 스스로 깊이 고민하게끔 하는 것은 교사의 몫이다.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충분히 물었으니 나는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철학을 아이들과 나누어야겠다. 그것 역시 교사의 몫이다. 아이들이 철학을 바탕으로 스스로 삶을 가꾸며 살기는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한가지 감격스러운 것은 내가 철학을 바탕으로 고민하고 아이들에게 본이 되고자 살아가는 태도로 살아가니, 아이들도 그러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눈에 보여서다. 참 아름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