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치과.
치과에서 유일하게 연령으로 구분된 분과이다. 모든 치료를 다 하는데, 모든 치료가 어설퍼 보였다. 당시 내 눈에는 말이다. 신경치료는 보존과보다 못한 것 같고, 교정치료는 교정과보다 못한 것 같고, 수술은 구강외과보다 못한 것 같고. 그런데 하기는 이것저것 다하고. 대체 이 과의 경쟁력이 뭐야? 전문의가 될 필요가 있는 거야?
치대는 부모님이 가라 했고 소아치과는 교수님이 날 꼬셨다. 나쁜 사람들. 왜 나한테 이런 걸 선택하라고 한 거야? 이게 뭐야 엉망진창이야! 부모님 탓이고 교수님 탓이야.
원망의 원망을 더하다 보니, 결국 한 질문에 닿는다.
그럼 너는? 넌 왜 선택 안 했는데?
사람의 가장 높은 욕구 중 하나는 인정 욕구이다. 학창 시절 나를 움직이는 동기는 대부분 인정 욕구였다. 공부를 잘한다. 칭찬받고 대우받는 경험은 나를 더 잘하도록 잘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것이 깨진 것이 치과 대학부터였던 것이다.
공부로도 날고 기는 친구들은 손재주도 엄청 좋았다. 수업시간에서 배운 주조 casting 기술로 여자 친구 반지를 만들어주는 신공을 부리는 애들이 즐비했으니. 난 실습을 해도 늘지가 않고 재미가 없었다. 잘한다 소리를 듣기가 어려웠다. 그러자 마음에 방어벽을 치기 시작했다. 그래 너네나 열심히 해라. 나는 안 하는 거야. 이런 기술자스러운 일 나는 안 하겠어.
누가 치과의사는 의사가 아니고 기술자 아니냐 하면 발끈하며 반발했다. 치과의사의 정식 명칭은 D.D.S로 surgeon이라고! 서젼이 어떻게 의사가 아니냐고! 그러면서도 정작 나 스스로는 기술자로 내 직업을 폄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료인문학자이자 소아치과의사인 김준혁 교수님은 왜 치과의사는 자부심을 가지지 않는가라는 문제제기를 했다. 치과의사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를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지 않고 치과의 전망을 축소시키고 제한했기 때문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 폄하하는 집단에게 외부의 존경이 있기란 어불성설인 이유이다.
레지던트 2년차였다. 첫 수면치료를 했다. 아이 약을 먹이는 것부터 모든 과정이 수월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는 잠들었고 수면치료를 시작했다. 그런데 치아를 다듬는 과정 중에 그만 입술을 젖히면서 보호를 하고 다듬어야 하는데 입술이 치과용 기구에 말려버렸다. 피가 철철 났고, 아이는 아픔에 깨서 크게 울었다. 지혈을 시키면서 하던 치료를 마무리하는데 아이는 깨서 울다가 토하고, 바지에 토사물이 묻은 채로 나는 무슨 정신으로 진료를 끝냈는지 모르겠었다.
보호자분께 사정 설명을 드리고 사과를 했다. 당연히 화내셔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내가 감내해야 한다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시던, (당시 보호자분은 할머니셨다.) 할머니는
“선생님, 괜찮습니다. 오늘 일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더 좋은 의사 선생님이 되세요.”
...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한참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선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우스워한 학문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있었다. 타인을 힘들게 했고, 아프게 했다. 나의 부족함이 해를 끼쳤다.
의사로서 사명감 따위는 모르겠다. 이 길이 내 길인지도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를 찾아오는 아이들이 나 때문에 더 힘들면 안 된다. 아이들을 괴롭히지 말자.
그것이 처음으로 직업에 대해 내가 가졌던 소명이었다
그렇게 나는 소아치과 의사가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