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언제부터 책을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한 국가와 민족만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에게도 역사가 있습니다.
질문이란 사람의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아주 좋은 매개체인 것 같습니다.
제 독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한 장면에 닿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숏컷의 머리가 잘 어울리시던 열정적인 담임선생님께서 교실 한 편에 책장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는 자비로 그 책장을 책으로 채워주셨어요. 세계 문학, 한국 문학, 고전, 소설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형형색색 꽂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는 동기부여를 해주셨죠. 일종의 독서 레이스를 했던 것 같습니다. 승부욕이 어릴 때부터 남달랐던 저는, 또 숏컷의 멋진 선생님이 좋았습니다. 선생님께 칭찬을 받고 싶다는 인정 욕구까지 더해져 이해도 잘 안 되는 책을 엄청 읽어댔습니다. 열정은 칭찬은 낳고 칭찬은 열정에 불을 더했죠. 그렇게 저는 톨스토이, 도스예프스키, 헤세 등을 만났네요.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이 헤르멘 헤세의 책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습니다. 12살이었으니깐요. 유명한 [데미안]은 물론이고 [수레바퀴 아래서]는 다 읽었는데도 내가 뭘 읽었는지 알 수 없었던 저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데미안]을 얼마 전에 다시 읽었더니 많은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었으니 [수레바퀴 아래서]에서도 한 번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이제는 좀 이해가 되려나요.
양적 팽창이 꼭 질적 성장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질적 성장에 양적 팽창은 필수 요소입니다.
책을 이해가 되든 안되든 열심히 읽다 보니 또 다른 책에 대한 갈증이 생겼습니다. 방학이 되니 책을 읽고 있지 않는 모습이 어색해졌습니다. 도서관으로 갑니다. 어떤 경로로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가 제 손에 들려졌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그 해 겨울은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귤을 까먹으며 [토지]를 그렇게도 열심히 읽어댔습니다. [토지]는 아직도 제게 인생 책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서희와 길상이, 주인공의 이야기도 좋았지만 임이네의 펄떡이는 생명력,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용이의 우유부단함, 그 사이에서 태어난 홍이의 고뇌까지 글로 어떻게 이렇게 살아있는 인물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소설에 맛을 들인 전 대하소설의 세계로 푹 빠져들게 됩니다. [대망]을 읽으며 노부 오부나가의 매력에 빠지기도, 우리에게는 전쟁을 일으킨 나쁜 놈으로만 여겨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칭기즈칸]을 읽으며 그 스케일이 두근두근하고 [태백산맥]까지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지금 제게 인간이란 단편적이지 않고 여러 면이 있을 수 있다는 모습을 아는 지혜가 약간이라도 있다면 그 당시 읽었던 대하소설 속 인물들이 알려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별하게 겉으로 티 나는 사춘기를 보내지는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당시 속은 약간 삐딱했습니다. 관조적인 시선을 보이는 책들을 찾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박경리 선생님의 [김약국의 딸들]과 염상섭 님의 [삼대]는 부잣집의 몰락과 비극이라는 클리셰 속에서 나타나는 허무함이 흥미로웠고요. 그런데 문학 과목은 엄청 싫어했습니다. 소설의 아주 일부만 발췌해놓고 저자의 생각을 읽으라던가, 이 단어가 비유하는 바를 찾으라는 문제들을 보면서 ‘이런 게 정답이 어딨어. 굳이 원한다면 내가 장단을 맞춰주지. 흥.’ 이런 삐딱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니 지적 허영심이 과도했던 시기네요. ㅎ
이런 허영심은 대학까지 이어집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열광한 후 일본 문학에 심취합니다. 당시 일본 문학에는 요시모토 바나나 등의 여류작가들의 작품이 많았는데 욕조, 와인, 자살로 대개의 작품이 이어집니다. 쿨함에 대한 동경이 과도했던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다시 돌이켜보니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그런 시기들을 거쳐 지금은 보다 실용적인 책들을 주로 읽습니다. 삶이란 눈은 멀리 보고 다리는 꼿꼿하게 현실을 딛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이가 되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배움을 얻기 위해 주로 책을 읽긴 하지만 여전히 책이란 저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유희입니다. 음악에 대한 조예도 별로 없고 운동도 좋아하지 않는 전 책을 읽으면서 가장 행복하고 좋은 책을 만났을 때 가장 가슴이 떨립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며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 어느 곳에나 도서관은 있고, 도서관의 책은 무료이니 그다지 성공하지 못해도, 큰 부자가 되지 못해도 나는 언제나 행복할 수 있겠구나 하고요. 기본 값의 역치가 낮다고나 할까요. 언젠가 치과의사로서의 삶을 끝내고 전국 곳곳의 도서관이나 책방을 다니며 책 냄새를 맘껏 맡는 상상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독서의 역사는 어떤가요. 그 역사의 시작은 어떤지요.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한 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독서 역사의 시작이 한 선생님의 책장으로 시작되었으니 소아치과 진료실에도 자그마한 책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어느 누군가의 역사의 시작이 될지도 모르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