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 일입니다.
오래 책을 멀리하다가 책을 좀 읽고 싶어졌습니다. 무작정 서점으로 갑니다. 서점을 뱅글뱅글 몇 바퀴를 돕니다. 베스트셀러 책도 보고 누워있는 책도 보고 서 있는 책도 봅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 베스트셀러에 올려져 있는 책 두세 권을 들고 집으로 옵니다.
책을 별로 읽지 않던 시절에는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싶은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책을 고르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서점과 도서관의 책은 제게 너무, 너무 많았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읽고 싶은 책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납니다. 책을 주문한 택배 도착 문자를 보면 가슴이 뜁니다. 얼른 퇴근해서 책을 뜯어 펼쳐보고 싶습니다. 책은 신선도가 없어지기 전에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 번에 여러 권을 주문하지는 않습니다. 2~3일 간격을 두고 주문합니다. 제 나름의 재고관리 방법이라 할까요. 그럼에도 점점 집안의 곳곳은 책으로 점령당하고 있습니다. 안방의 붙박이장은 분명 용도가 옷장인데 옷은 책에게 이미 자리를 내준 지 오래입니다. 가구도 주인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는 것이죠.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책 추천은 참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상대의 독서력을 알기도 어렵고 상대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는 상대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잘 모를 때 추천은 더욱 어렵습니다. 책을 종종 선물하기도 하는데 주로 베스트셀러 중 읽기가 편하고 보편적인 정서를 가진 책을 선물하는 편입니다. 안전한 선택을 한다고 할까요.
한수희 작가는 책 「온전히 나답게」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은 좋아하는 남자애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다.
그 애는 엄청나게 많은 좋은 점들을 갖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운 마음이 든다. 겨우 저 정도의 남자애를 좋아하느냐는 핀잔을 들을까 두렵기도 하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 애에 대해 실망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나는 가급적이면 그 애를 감추고 싶다. 가급적이면 나만 아는 좋아하는 사람으로 남겨두고 싶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온 세상에 다 떠벌린다 해도 모자랄 판이다.”
너무 공감이 갑니다. 그래서 책 추천은 못해도 블로그에 책 서평을 그리도 열심히 쓰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좋아하는 책에 대한 헌사를 못하면 손가락에 가시가 돋는 느낌입니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나쁜 책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굳이 책을 고르는 방법을 말하자면 처음에는 그저 마음이 끌리는 책을 집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좀 읽다가 흥미로우면 끝까지 읽어 보시고 아니면 던져버리세요. 늘 말씀드리지만 세상은 넓고 책은 많습니다. 처음에는 블로그나 유튜브, 신문 등의 책 소개를 참고하는 것도 좋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추천하는 책은 내 마음에도 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책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책은 책을 데려옵니다. 책 속에 인용된 책이나 그 책과 관련된 책들이 줄줄이 따라옵니다. 늘 시작이 어렵지 그다음은 쉽습니다. 때로는 관심 없는 분야의 책이나 평소 불편하게 생각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야말로 역설적이게도 나를 가장 성장시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런 책들은 혼자서 읽기에는 너무 힘드니 독서모임 등을 이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어떤 책인지 확신이 안 들 때는 서문과 작가 소개란을 꼼꼼하게 보세요. 서문은 그 책의 핵심입니다. 서문은 책의 맨 앞에 있지만 보통 책을 쓸 때 작가들은 서문을 제일 마지막에 씁니다. 그래야 책의 내용을 충실하게 담을 수 있기 때문이죠. 책은 작가의 전 인생을, 영혼을 담고 있습니다. 책이란 얼마의 돈으로 작가의 인생을 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런 작가의 삶의 자취가 와닿지 않으면 책도 매력적이긴 어렵습니다.
일본 지성의 거인이라 불리는 다치바나 다카시는 ‘인생 책 베스트 5’를 추천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응수했다고 합니다.
“그 부탁은 거절하고 싶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누군가 추천해준 책을 읽고 기뻤던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라는 후회만 남았으니 말입니다.
결국 책과의 만남은 스스로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