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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은 해야죠.(1)

by 김모음





내가 학원에 들어오고 6개월 뒤 박 선생님이 들어왔다. 학원의 규모와 커리큘럼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선생님이 필요했던 것이다. 화장기도 거의 없고 앳되어 보이는 새 선생님은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새내기였다. 한 때 작가를 꿈꿨고, 20대 때는 고시공부만 하느라 지금에서야 학원 선생님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했다. 역시나 박 선생님은 첫 출근부터 열심이었다. 물론 깜빡하는 부분도 있고 (이건 나도 남 말할 처지는 못된다.) 늦잠 자느라 지각을 하기도 했었지만 귀여운 실수로 넘어갈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세 달, 네 달이 지나가면서 이게 맞나 싶은 순간이 자주 온다고 했다.


“선생님은 이 일 어떠세요?”

“어떤 면에서 얘기하는 걸까요?”

“제가 이 일 하기 전에 다른 알바를 잠깐 했었는데요. 육체적으로는 좀 힘들긴 했지만 시급이 괜찮았거든요. 근데 여긴 근무시간 외에 공부하는 시간도 있는데 그에 대해선 근무로 쳐주지도 않고 시급도 거의 최저시급이잖아요. 그래서 오전엔 다른 일도 구해서 투잡을 뛰어야 할 것 같아요.”

“음... 하기야, 이 분야가 시급이 넉넉하진 않죠. 학원은 오후에만 수업이 있으니 오전에 다른 일을 하는 것도 괜찮겠네요. 그런데 아침에 학원 올일이 있을 땐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럴 경우 어떻게든 핑계를 잘 대야겠네요. 근데 웬만하면 학원에 먼저 알리진 말아요. 학원 일에 지장줄 수 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일단 한번 오전 일이 있나 찾아봐야겠어요.”


며칠 후 박 선생님은 조건에 맞는 아침 근무를 찾았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학원이 한 달 내내 오후에 출근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한 달에 한 번 오전에 모여서 다음 달 수업할 것에 대한 스터디를 했고 학부모 설명회나 선생님 대상으로 본사 교육이 있으면 무조건 오전 출근을 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시 안일하게도 나는 ‘거절’을 못해서 오전방학특강을 맡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의무사항이었다.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답정너였던 것이다.

방학특강까지도 갈 일이 없었다. 선생님의 투잡은 한 달이 조금 넘은 시기에 발각되었다. 아니, 선생님이 제 입으로 이실직고를 해버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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