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은 행동파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당장 실행한다. 하지만 그렇게 할 일을 스스로 만들다보니 미처 하지 못한 것들이 계속 쌓여갔다. 결국 육체적 한계를 느끼게 되었고 학원 경영과 교재 개발에 집중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그녀가 하고 있던 수업은 차근차근 나에게 넘기기로 했다.
원장은 주로 초등 6학년과 중학생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대부분 2년 이상 된 장기등록 학생이었다. 물론 학부모와도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래서 갑자기 가르치는 선생이 원장에서 ‘듣보잡’인 나로 바뀌면 학부모의 불만이 있을 수 있기에 1달 4회 수업 중 2회는 원장이, 2회는 내가 번갈아 가며 수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3~4개월 동안 수업을 진행하던 중, 나는 학원 다니고 처음으로 이틀간의 휴가를 냈다. 일부러 가장 수업이 적은 날을 골라 일정을 맞춰서 휴가를 낸 것이었고 휴가 기간 중 내 수업을 원장이 대신 맡아주기로 했었다.
여담이지만 여행을 하는 중에도 마치 학원에 있는 것 같았다. 학원 단체 카톡방에서는 평소보다 10배가 넘는 메시지들이 왔다 갔다 했다.
“000이 교재는 어디 있죠?”
“00 이가 몇 시에 온다고 했죠?”
“000 어머님께 전화드렸나요?”
“00에게 보강 언제 할 수 있는지 물어봐주세요.”
부원장이 보내는 카톡에 자꾸 눈이 갔다. 나에게 물어보는 게 아니라 다른 선생님한테 물어보는 메시지들이었지만 여행 이틀 내내 신경이 쓰였다. 문자를 보기만 해도 숨이 가빴다. 찌뿌둥한 휴가를 보내고 첫 출근을 했다.
“원장님이 독감 걸려서 출근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원장님 오실 때까지 원장님 수업 좀 대신 들어가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알고 보니 휴가기간 동안 부탁했던 내 수업도 모두 못했다고 한다. 아이들과 스케줄을 맞춰서 못했던 수업을 해야 했다. 그렇게 내 수업과 원장이 맡았던 수업을 다 하다 보니 그 달에는 원장 담당 수업을 한 달 내내 내가 가르친 꼴이 돼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 원장에게 학부모의 컴플레인이 이어졌다.
“우리 애가 그러던데 한 달 내내 원장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는데 이제 수업 안 하시는 거예요?”
“아니, 다른 엄마 말 듣고 원장님 직강이라고 해서 보냈는데 왜 말도 없이 다른 선생님이 하는 거죠?”
원장은 독감에, 이래저래 바빠서 이번 한 달은 수업을 못했다고 변명을 했지만 너무나 괘씸했던지 한 학부모는 그 달로 학원을 끊어버렸다.
“원장님, 어떡하죠. 컴플레인 많나요?”
“아휴, 난리도 아니네요. 근데,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원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수업 때문에 신경 못 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잘 됐어요, 뭐. 이 기회에 정리하는 거죠. 선생이 잘 가르치는지 못 가르치는지는 아이들이 더 잘 알아요. 이상하면 애들이 먼저 말해요. 괜히 엄마들이 나랑 오래되기도 했고, 또 원장 프리미엄 같은 걸 믿어서 그러는데 신경 쓰지 말아요.”
하지만 계속 신경 쓰이는 한 아이의 학부모가 있었다. 이 아이는 원장과 4년 이상 같이 공부한 아이 었고 전교회장까지 할 정도로 소위 말하는 ‘모범생’이었다. 이 아이의 어머니는 똑똑한 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초등학교 졸업식 때 쓸 학부모 연설문까지 원장에게 부탁할 정도로 원장에 대한 믿음이 깊었다. 원장이 독감 때문에 수업을 못했을 때도 열을 올려 컴플레인 한 학부모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방학특강 때문에 연락을 해도 내 전화는 받지 않았다. 문자에도 답하지 않았다. 대신할 말이 있을 때는 꼭 원장에게 직접 전화했다. 내가 문자로 물어봐도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답했다.
원장의 수업을 계속 듣던 이 아이는 중학생이 되자 논술학원 수업시간을 변경해야 했다. 가능한 시간은 오로지 내가 하는 수업뿐이었다. 원장은 그 어머니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못 미더우시면 아이에게 직접 선생님이 어떻냐고 물어보고 결정하시라는 조언과 함께.
이후 나는 그 아이와 3개월째 수업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도 그 어머니는 나의 연락은 받지 않고 원장에게 직통전화를 건다. 원장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것들이 모여서 지금의 원장과 학원이 있다. 그 증거로 업계에서 드물게 큰 규모와 압도적 회원수를 자랑하고 있다. 20년 넘게 한 우물만 파온 결과물로 수업에 대한 경험치와 학부모를 대하는 노련함은 대단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반면 나는 경험도 부족하고 듣보잡이라 학부모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컴플레인 유발자이다. 원장에겐 넘치지만 나에겐 없는 것, 경험과 신뢰. 끈기와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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