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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은 해야죠. (2)

by 김모음




이실직고 후 며칠 뒤, 같이 퇴근하는 길에 투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침 일 그만두래요. 물론 직접적으로 저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결론적으론 그 말이에요. 방학 때 특강도 해야 하고 한 달에 한번 스터디하려면 오전에 모여야 하는데 그러면 학원 일에 지장 준다고요. 만약 월급을 더 원한다면 일하는 시간이랑 요일을 더 늘려주겠다고 했어요. 근데 그건 좀....시급 안 좋은 일을 오래하는건 의미가 없어요.“

“음... 학원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오후에 몇 시간 일하는 것 때문에 하루 전체를 포기하라는 것처럼 들려서 좀 횡포 같단 생각도 드네요.”


일 년에 약 12번의 방학 특강을 위해 나머지 시간에 일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는 것 같아 갑질로 느껴졌다. 그리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을’의 울분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난 소심한 찌질이라 절대 갑질하는 당사자에겐 말을 못 한다. 혹시나 의심할까 봐 티도 못 낸다. 그 울분을 시작으로 우리는 이 바닥의 짜디 짠 시급에 대해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박선생님, 전 일단 1년 될 때까지는 기다리려고요. 3달만 있으면 다시 계약 갱신하는데 그때 시급도 올려달라 말하고 주휴수당도 달라고 말해보려고요.”

“아휴... 전.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할까 말까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해요. 근데, 저 할 말은 다 해요. 나에게 너무 많은 걸 시키면 못하겠다고 말해버려요.”

“그게 맞아요. 나처럼 그냥 네네~ 그러면 진짜 다 괜찮은 줄 알아요. 처음부터 딱 경계를 쳐야 결국 나에게 좋은 거예요. 난 면전에서 거절을 못하는 병에 걸려서 그래요.”

“그런데 그렇게 못하겠는 걸 못한다고 말하면 ‘그 정도도 못하면 안 된다. 그건 너의 능력 문제이니 능력을 더 키워야 한다. 이 정도 하는 건 기본이다.’ 하면서 저의 자질 문제로 몰아가요. 듣다 보면 기분 나빠요.”

“그런데 내가 일하기 편해지려면 욕을 좀 먹더라도 확실하게 하는 게 좋다고 봐요. 나는 그걸 못해서 내가 내 무덤을 파거든요.”

“편해지고 아니고를 떠나서 전 그냥 담아두고는 못 있겠어요. 아닌 건 아니라고 말을 해야 해요. 솔직히 최저시급 주면서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거 같기도 해요.”


그녀의 당당함이 부러웠다. 난 뒤에서 구시렁거리기 챔피언급이지만 남 앞에서는 말을 1도 못 하는 쭈그리 챔피언이기도 하다. 불만과 부당함을 말하는 순간의 얼굴 붉힘을 견디지 못해 속에 꾹꾹 담아놓는다. 그렇게 가슴속에 쌓아두다가 결국 나중에 혼자 폭발해서 즉흥적으로 때려치워버리는 일이 많다. 박 선생님처럼 당장 그 순간엔 불편할 지도 모르지만 그때그때 불만을 말하고 해결하면서 일을 오래 지속하는 것이 자신에겐 훨씬 이득이다.


요즘 MZ 세대와 같이 일하기 힘들다는 기성세대들이 많다. 그들의 행태를 비꼬는 숏츠나 글도 간간히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고용주의 입장에서 작은 일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으니 복장이 터질 수도 있겠으나 나는 현재 ‘을’이다. 앞으로도 고용주가 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들의 ‘거부’를 조용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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