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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생은 과학책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우울할 땐 뇌과학 by 앨릭스 코브

by 김모음






우울증. 나와 상관있는 단어일까? ‘우울증’ 하면 불안, 걱정, 절망, 부정이라는 단어들이 떠오른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이 단어들은 나에게 거부감이 들긴커녕 너무 익숙해서 오래된 친구 같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항상 최악을 먼저 생각하고 시작했다. 학교시험을 볼 때도, 반장선거에 나갔을 때도, 수능시험을 치고 학교 원서를 접수할 때도, 취업을 할 때도 항상 최악의 상황이 먼저 떠올랐다. ‘0점 맞으면 어떡하지, 단 한 표도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원서 넣은 모든 대학교에 떨어지면 어떡하지, 이대로 영영 취업을 못하면 어떡하지’ 등이 본능적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억이 나진 않지만 몇 번의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고, 그 후 나라는 자아의 기억이 시작되는 부분부터는 예외 없이 두려움이 먼저 앞섰다. 이렇게 형성되고 굳어진 나의 부정적 사고회로는 한창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유년기에는 꽤 도움이 되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항상 option B를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고,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앞서, 내가 쓴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히 준비했다. 하지만 항상 성공할 수는 없었기에, 만약 실패했었더라도 최악보다는 낫다면서 스스로 합리화하곤 했다. 웬만하면 만족하려 했다. 즉, 걱정과 불안은 나를 움직이게 하였고,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사고체계는 결국 우울증에서 벗어나 ‘살고자’ 하는 생존본능에서 나온 것임을 뜻밖에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의 저자는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으로 재앙적 사고를 피하라고 했는데, 그 방법 중 하나가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대처 계획을 세우고 웬만하면 만족하라는 것이었다.


우울증은 전두-변연계의 의사소통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전두는 인류가 태초에 약육강식의 대자연에 노출되어 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항상 경계하고 조심하도록 단속하는 역할을 해왔다. 변연계는 감정에 관여하는데, 경계와 조심이라는 이성적 판단에 감정이 섞이게 되면 걱정이 불안으로 변한다. 그리고 이 불안함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면 우울증이 시작된다. 인간의 뇌는 행복했던 경험보다 부정적 경험을 더 잘 기억하도록 설계되어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류는 지난날 실패했던 부정적 경험들을 토대로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기억이 생존의 열쇠였던 셈이다. 인류의 역사가 3000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점에서 볼 때, 두꺼운 콘크리트 안에서 육체적 안전을 보장받은 지는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뇌의 진화속도가 왜 이렇게 느려터졌냐고 불평할 수는 있겠으나, 뇌는 죄가 없다. 인간의 생활상이 너무 빠르게 변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여전히 위험에 민감하고, 우리의 머릿속은 항상 걱정이 가득하다.


유독 왜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으로 힘들어할까? 현대인의 뇌가 유난히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반응성과 흥분성을 가진 것일까? 조심스레 발언컨데 우리가 너무 복잡하게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연봉도 올리기 위해서 미라클 모닝루틴도 따라 해 봐야 하고, SNS에서 유행하는 챌린지도 해봐야 하고, 맛집도 가봐야 하고, 오운완도 해야 하고, 연예인 같은 멋진 외모를 위해 다이어트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엔 내가 가진 것이 너무 적고 모자라다. 자신의 인생도 살고, 남에게 보여주는 인생도 살기엔 하루가 너무 짧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깊어지면 자연스레 불안, 좌절, 의욕상실도 커진다. 우울증과 짝꿍처럼 같이 따라다니는 단어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생존과 직결되기에 많은 시간을 노동에 할애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으나,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그 외의 시간엔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등 하루를 단순하게 보낸다면 지금보다 더 우울할까? 무료하고 재미없다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복잡하게 살아서 현대인들이 지금 행복한가? 역사상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사는 지금,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나 많은가? 어떤 일이 잘못되었다 느껴지면 처음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초심을 찾으라고 한다. 인간 처음의 삶, 늘 그러했듯, 그저 그런, 너무 당연해서 간과했던 단순한 일상이 소중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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