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한다. 뭔가 잘못된 모양이다. 복받치는 감정을 애써 눌러가며 아이가 말했다.
"다시 가져오면 안 돼?"
정말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가족들에게 산세베리아는 거실 한 켠을 지키는 가구 같은 존재였다. 생물이지만 무생물에 가까운 존재랄까? 가족 중 나를 제외한 누구도 그를 돌보지 않았고 크게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이 폭발적인 반응은 뭐지? 나는 당황했다.
"다시 가져올 수 있어. 근데 너한테 소중한 거였어? 엄마는 전혀 몰랐네?"
다시 가져올 수 있다는 말에 조금 진정된 아이가 말했다.
"내 자랑거리였어. 엄마가 드루이드처럼 식물을 잘 키우잖아. 산세베리아는 꽃 피기 힘든데, 우리 집은 꽃이 여러 번 피었잖아. 엄마 대단해."
아이의 말에 잠시 멍했다. 엄마가 산세베리아를 잘 키우는 게 아이의 자랑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실 산세베리아는 알아서 잘 크는 식물이다. 태생이 까다롭지않아서 물을 대충 줘도, 햇볕을 대충 쬐도 무럭무럭 제 갈 길 가는 아이. 키우는데 특별한 스킬이 필요한 식물이 아니기에 이 아이가 잘 자란 것에 나의 지분이 있다면 적당한 무관심 정도뿐이다. 이 정도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대단한 게 너무 많은 인간인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자기소개서에 쓸만한 훌륭한 업적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걸어온 길을 하나하나 되짚어봤다. 제법 굵직한 것들을 떠올리다가 이내 이게 과연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건가 의심스러워졌다. 남이 생각하기에 그럴듯한 거 말고, 내가 생각하는 기특한 내 모습을 떠올리고 싶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참 괜찮은 내 모습 말이다. 최근 가장 기특하고 뿌듯한 건 운동할 때의 내 모습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필라테스를 하는데 솔직히 할 때마다 힘들어 죽을 것 같다. 운동을 하다 보면 재미가 붙기도 할 텐데 타고난 저질체력인 나는 감히 재미 같은 걸 논할 처지가 못 된다. 시작한 지 2년이 넘었는데도 운동할 때 가뿐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말 신기하리만큼 매시간이 어김없이 힘들다. 그래서 운동이 끝나고 거울에 비친 땀에 절고 산발이 된 내 몰골은 흡사 추노꾼에게 끌려가는 노비 같은 모습이다.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실소가 절로 난다.그래도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이 몸부림 속에 뿌듯하고 기특한 내 모습이 있다.
필라테스 동작을 하다 보면 체력적인 한계가 자주 온다. 그래서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는대도 동작을 반복하는 횟수를 못 채울 때가 있다. 그럴 때, 동작을 8개 해야 하는데 힘이 부족해 6개밖에 못했다면, 나는 잠깐 호흡을 고르라고 주는 타이밍에 어떻게든 나머지 2개를 채워서 한다.다들 제 운동하기 바빠 내가 2개를 빼먹었다는 사실 같은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힘에 부친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내 몫으로 주어진 것은 어떻게든 해보고 싶어서 나는 그렇게 한다. 세상 아무도 모르는 이런 내 모습을, 내가 안다. 나는 이런 내 모습이 기특하다. 그게 참 중요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알게 되는 건 이런 모습들을 통해서인 것 같다. 그 모습 안에는 내가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이지만 하고 나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이 들어있다.그런 사소한 것들이 소소하게 쌓여갈 때, 나는 나를 꽤 괜찮은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다.
창문에 부딪힌 산비둘기가 정신을 챙길 때까지 곁을 지켜준 나, 횡단보도 앞에서 코피가 터진 아이에게 머플러를 벗어 닦아준 나, 기억에 남는 하루는 그림으로 그려 소중하게 보관하는 나, 누가 보든 안 보든 착실하게 살려고 애쓰는 나, 어린아이들에게는 가장 깊은 곳에 간직한 친절을 꺼내 보이는 나,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쏟아진 쌀알처럼 뿌려대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