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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종관 Aug 27. 2024

빛 하나

      카메라로 보이는 집은 환했다. 처음에는 밤에 보이는 환한 화면의 의미를 몰랐었다. CCTV를 설치한 기사의 설명으로 밤의 마당이 환하게 보이는 것은 실재의 밝음이 아니라 카메라의 적외선이 보여주는 투시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해 뜨기 전의 새벽빛처럼 희끄무레한 밝음 속에서 집은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집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보였다. 하루살이 몇 마리가 카메라 주위를 날아다녔다. 나이가 많은 집이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무덤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카메라를 설치하기로 한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노년이 되어 사람과 사물의 이름을 자꾸 까먹는 것을 넘어서 헛것을 보는 증세가 생겨 처마 밑에 CCTV 카메라를 설치하고 안마당을 살펴보기로 했다. 카메라가 어머니를 지켜 주는 것은 아니지만 멀리서나마 더 자주 어머니의 모습을 살펴보고 싶었다. 마당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어머니를 화면으로 보는 것은 반가움과 불안함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긴 시간 마당에 혼자 앉아 있는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엄마, 뭐 해?’ 잘 듣지 못하는 어머니 귀에 대고 아이처럼 큰 소리로 부르고 싶었다.      


     깊은 밤, 카메라는 비어 있는 마당을 비추고 있다. 마당은 텅 비어 있고 날벌레들의 날갯짓만 가끔 지나갈 뿐이다. 어머니는 다듬던 콩깍지 덤불을 내버려 두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이 되면 마당에 나와서 그것들을 다시 뒤적일 것이다. 시골집의 밤은 어슴푸레한 화면 속에서 동화처럼 흘러간다. 나는 꿈속인 듯 카메라의 눈이 되어 집 안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집은 평면도로 보면 일자로 벋은 직사각형이다. 고샅길에 면한 앞마당은 널찍하게 비어 있고 밤나무가 자라는 뒤란은 ㄱ자로 굽어 있다. ㄱ자의 모서리에 장독대가 동그마니 자리 잡았다. 뒷집과의 경계에 덩굴나무가 자라는데 무성하게 자란 덩굴이 울타리 노릇을 하고 있다. 지나간 일들이 떠오른다. 기억 속의 카메라는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인 어머니의 머리처럼 두서가 없다. 집의 맨 처음 기억은 시멘트와 슬레이트를 실은 트럭에서 내리는 아버지부터다. 아버지는 집 지을 자리를 이리저리 살펴본다. 농부인 아버지는 집 짓는 기술이 없었지만, 그 시절에는 누구나 집을 지을 줄 알았다. 안방이 될 사각형에 나무 막대기를 꽂고 끈을 묶어 벽돌 쌓을 자리를 가늠하는 아버지의 손놀림이 능숙하다. 쉬지 않고 피워 대는 담배 때문에 눈이 맵지만, 몽당연필을 귀에 꽂은 아버지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작업에 몰두해 있다. 집은 금방 올라간다. 마을 사람들이 와서 집 짓는 구경을 했다. 모두들 한 번씩 집 지어 본 경험이 있어서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제안들을 했고 아버지는 듣는 둥 마는 둥 일을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는 양지바른 곳에 가마니를 깔고 점심을 차려 놓았다. 금색 도금 주전자에서 꼴꼴꼴꼴 소리를 내며 막걸리가 흘러나와 스테인리스 대접을 채웠다. 아버지는 단숨에 한 사발 들이켰다. 깍두기 안주를 씹는 소리가 모서리뿐인 집 안에 울려 퍼졌다. 집은 조만간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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