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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종관 Aug 31. 2024

빛 다섯

  아버지의 삶은 땅에 박혀 있었다. 다른 일은 해본 적이 없거니와 애초 시도도 하지 않았다. 형 때문에 집안이 늘 어수선했지만 땅에 붙들린 아버지의 일생은 평화로웠다. 조상에게 물려 받은 논 몇 마지기와 산비탈 밭이 전부였지만 아버지는 게으르지 않은 농부의 뚝심으로 땅을 보살폈다. 농사는 한결 같았다. 날씨가 변화무쌍하여 수확이 늘고 줄 때가 있었지만 그런 일 때문에 농사를 멈추는 일은 없었다. 논에서는 벼가 자랐고 산비탈 밭에는 들깨, 옥수수, 녹두콩, 팥 그리고 김장 무 배추가 쉬지 않고 자랐다. 밭에서 나오는 것들은 식구들의 양식이 되었고 부족한 대로 아이들의 학비가 되었다. 가끔은 밭의 수확으로 목돈을 만지기도 했다. 어느 해인가 고추를 심었는데 그 해 풍수해가 심해서 고추값이 뛰었다. 산비탈 밭에서 물빠짐이 좋았기 때문인지 아버지의 고추농사는 풍작을 이루었고 뜻하지 않게 큰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장사꾼에게 뭉칫돈을 받던 날 아버지는 읍내에 가서 거나하게 술에 취해 들어왔고 한 손에는 묵직한 덩치의 라디오를 사들고 왔다. 라디오에서는 아버지가 흥얼거리는 노래가 나왔고 나는 누나들과 어린이 연속극을 저녁마다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운이 좋은 해는 많지 않았고 힘겨운 노동의 대가를 간신히 돌려주는 정도의 수입을 올릴 때가 대부분이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세월을 한탄하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는 형의 장래가 걱정일 뿐 농사가 잘되거나 안 되는 일로 일희일비 하지 않았다. 땅에 몸을 맡기고 욕심 부리지 않는 아버지의 삶은 평온했다. 좀 더 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말하는 어머니에게 여한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나보다 먼저 가서 다행이다. 내가 먼저 가고 아버지가 살았더라면 너희들 고초가 심했을텐데… 어머니는 들녘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식들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르신도 적적함이 덜 하실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요.”     


  카메라를 설치하는 이유를 하소연 삼아 늘어 놓는 나에게 설치기사는 경험 많은 사람의 조언을 했다. 나는 기사의 충고를 믿기로 했다. 어머니도 카메라가 있으면 조금이나마 덜 외로울 것이다. 나는 확신 없는 생각들을 막무가내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며 설치를 강행했다. 어머니가 카메라 설치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때부턴가 당신의 생활은 자식들에게 맡겨진 신세가 되었다고 푸념하듯 말한 후 어머니는 집안 일에 대해서 의견을 내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카메라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 그것은 그저 멍한 눈알로 앞에 있는 피사체를 이쪽에 전달할 뿐이었다. 어머니의 안부가 궁금해도 모시고 살지 못하는 자식들의 미안한 마음을 조금 대신할 뿐이었다. 어머니는 그것이 달려 있는지 의식 조차 하지 않았다. 마당은 한낮의 빛을 금방 잃어버렸다. 빛들은 마당 귀퉁이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들국화에서 뿜어 나오다가 해가 지면 금방 사그라 들었다. 밤이 되면 적외선으로 보이는 마당은 흑백의 단조로운 영상뿐이었다. 이따금 쪼르르 달려가는 생쥐 같은 동물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적막한 잿빛 영상 뿐이었다. 어둠이 내린 후 바깥으로 나올 일이 없는 어머니의 방 창문은 카메라로 보이지 않는 각도에 있었다. 어머니가 혼자 보내는 밤이 부디 평안하기를 바랐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어머니는 어떤 상념으로 밤을 지새울 것인지, 잊지 않고 약을 드셨다면 밤잠을 설치는 일은 없을 것이지만 잠이 들기 전 막막한 적막 속에서 어머니의 상념은 끝도 없는 어둠을 달려 나갈 것이다. 어머니는 벌써 이십 년 가까이 혼자 지내고 있었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간 날의 일을 어제 일인듯 기억했다. 그날 아버지는 논에 가서 벼를 보고 왔다. 어느 해보다 곡식이 잘돼서 황금빛으로 익은 벼들이 들판을 탐스럽게 덮고 있었다. 아버지는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논을 둘러 보았다. 바람에 일렁이는 황금 들판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했다.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렁이는 벼이삭을 손으로 쓸어보고 감회에 잠긴 아버지는 저녁 무렵 경운기를 끌고 돌아왔고 차려진 밥상에 앉아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이었다. 어머니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아버지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예감이 있었던 걸까. 어머니는 늦도록 깨어나지 않는 아버지가 가야할 곳으로 갔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흔들어 깨우지 않고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돌아갔다는 말을 전했다. 아버지의 마지막이 편안했던 것도 타고 난 복이라는 말로 아버지의 영면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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