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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종관 Aug 30. 2024

빛 넷

  개나리 노란 꽃잎이 흐드러지는 화창한 봄날, 어머니는 외출에 나섰다. 그날 다행히 주말을 맞아 시골집에 내려와 있던 우리는 어머니의 외출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방에서 주무시나보다 하고 부엌에서 점심 준비를 하던 우리는 어머니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무심히 보았다. 아마 이웃집 마실이라도 가시려나 했었다. 하지만 식탁 앞에 앉아 마늘 다듬는 걸 도와주던 나는 어머니의 예사롭지 않은 표정을 보았다. 마실을 가는 사람답지 않게 어딘가 먼 허공을 보는 듯한 어머니의 표정은 근심 있는 사람처럼 어두워 보였다. 이상한 예감에 어머니의 외출을 따라 나섰다. 어머니는 신발을 대충 꿰어신고 마당을 지나 마을 고샅길로 걸음을 옮겨 놓았다. 버스가 서는 정류장 쪽에 볼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더 따라가 보았다. 힘 없는 걸음걸이가 위태로워 보였다. 달려가 붙잡아 주어야 할 것 같은 걸음을 조금 더 따라가자 어머니는 한 곳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이윽고 뒤따라 온 나를 발견한 어머니는 눈에 초점이 모아지며 말했다.      


  “네가 왜 여기 있냐? 내가 분명히 영돈이 뒤를 따라 나왔는데…”     


  영돈이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형의 이름이었다. 어머니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고 길고 지루한 병원 순례가 시작되었다. 이름도 어려운 처방을 말하며 의사는 말했다.      


  “증세가 금방 좋아지지는 않을 겁니다. 약을 드시면 진행이 더디기는 하지만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항상 생활을 조심하시고 잘 보살펴 드리세요.”     


  의사는 흔한 노인성 퇴행 증상이라고 말했지만 어머니의 치매를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다행히 평생 농사일을 한 건강한 체질 때문인지 처방 약은 효과가 좋았고 불안한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일상을 도와주는 요양보호사가 오게 되었고 우리는 더욱 자주 시골집 왕래를 하게 되었다. 얼마나 더 살까. 너무 오래 살아서 걱정이다. 어머니는 습관처럼 자신의 여명을 힘겨워했다. 위로할 말은 많지 않았고 노인의 평생에 쌓인 회한은 부스러질 것 같은 어머니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형은 어릴 때부터 집 밖을 떠돌았다. 어머니가 형 얘기를 할 때마다 두고두고 후회하는 것은 너무 어린 나이에 아이를 집 밖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서울 사는 친척집에 맡겨 유학을 보낸 것이다. 그 때 형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나이였다. 시골서 자라면 고달픈 농사 밖에 할 일이 없으니 넓은 세상으로 나가 잘 살게 하겠다는 것이 부모의 계획이었다. 어찌보면 무모한 계획이었지만 도시로 나가서 성공한 사람들의 소문이 흔하던 시절이어서 형에게 다른 삶을 살게 해주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문제는 형에게 있었다. 그는 애초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형은 부모의 기대와는 다른 길로 접어 들었다. 어렵사리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부터는 질이 안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사고뭉치가 되었다. 낯설고 황량한 도시에 혼자 던져진 생활이 그의 성격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농사꾼으로 자라는 게 낫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두고두고 후회를 했다. 맡겨진 친척집에서는 시골서 올라오는 돈으로 형의 숙식을 해결해주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내가 아직 학교에 들어가기 전 어린 나이일때 형은 가끔 집에 나타났다. 그래봐야 까까머리 중학생을 막 벗어난 나이였을테지만 형은 심각한 표정으로 방 한 쪽 구석에 앉아 있었다. 형이 집에 왔을 때는 늘 사고를 일으킨 뒤였다. 친구들과 싸움을 하거나 학교에 가지 않아 부모님을 찾는 호출을 당한 뒤 형은 집으로 불려내려와 근신의 시간을 가졌다. 형의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갈수록 불안정하게 떠도는 생활을 이어갔고 부모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되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정신없이 나부끼는 눈송이들의 광란의 춤을 보고 있으면 시야가 어지러운 중에도 알갱이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수천 마리 물고기떼가 큰 물고기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도망 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고기들의 군무는 얼핏 아름다워 보였으나 그들로써는 살아 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중이었다. 몸이 부서져라 달아나지 않으면 가장 먼저 희생자가 될 터였다.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삶이란 얼마나 고달픈 것인가.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도 그들 중 누군가는 포식작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잔혹한 운명의 물살 안에서 한 마리 물고기의 목숨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가늘게 떨리는 꼬리들의 춤이 희뿌연 어둠을 안타깝게 채웠다.      


  “형은 어릴 때 혼자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그래서 제대로 살 수 없었다. 곁에 두고 보살펴 주었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텐데…”     


  어머니는 눈시울을 적시며 말했다. 형은 방만한 삶을 살았다. 도무지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 지 모르는 사람 같았다. 가끔 들어오는 집안에서 형은 우환덩어리였고 아버지는 그런 형을 엄하게 다루었지만 매질로 다루기에 형은 이미 다 큰 성인이 되어 있었다.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도 못하고 특기라 할 만한 것도 없었으므로 궁여지책으로 농사를 짓게 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따분한 시골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떠돌았다. 군대를 다녀와서는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성품이 모진 사람은 아니어서 나름대로 성공하여 부모를 편히 모시고 집안을 일으켜 보겠다는 포부는 컸지만 그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나이가 차서 결혼을 했고 결혼한 이후에도 형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형네 부부는 싸움이 잦았다. 가족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형을 지켜보았다. 그는 점점 화가 많은 사람이 되었다. 싸움이 잦은 습관은 결국 건강마저도 망가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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