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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종관 Aug 29. 2024

빛 셋

   어머니는 노년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어머니의 불행은 너무 오래 살기 때문이고 진작 아버지를 따라갔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오래 살아서 안해도 될 고생을 한다는 것이었다. 처녀 시집 안 간다는 말과 노인네 죽고 싶다는 말은 양대 거짓말 중의 하나라지만 어머니 말씀은 괜한 것만은 아니었다. 마을 전체가 무덤처럼 적막한 산골 마을에서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해바라기만 하는 생활이 행복할 리 없었다. 몸놀림이 자유로운 때는 텃밭 가꾸는 재미라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체력은 이제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집도 어머니도 너무 오랜 세월을 한자리에서 보냈다. 적당한 시절에 땅에 묻히는 것이 어머니에게도 집에게도 나은 일이었을까. 아버지는 장수하지 못했다. 어느 날 경운기를 끌고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는 들판으로 나가서 농사일을 하고 온 아버지는 일을 다 마친 것처럼 숨을 거두었다. 카메라는 아버지의 죽음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다. 아침에 낀 안개가 온종일 걷히지 않던 변고스러운 날 이후 아버지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구차하고 너저분한 걸 싫어하는 아버지는 당신에 대한 기억이 담백하게 남기를 원했다. 카메라는 몽상 속에서 아버지의 영상을 간소하게 줄였다. 꼭 필요한 말들로만 이루어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액자에 그린 수묵화처럼 간결했다.      


   깊은 밤, 같은 시간마다 떠오르는 영상이 있다. 열흘 치 영상을 녹화 중인 카메라는 언제고 되돌려보기를 할 수 있었다. 가끔씩 밤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돌려보기 하면 수상한 화면이 자정 무렵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카메라가 고장인가 싶어 문의를 하고 싶었지만 다른 시간에는 멀쩡하다가 그 시간만 되면 꿈처럼 나타나는 영상을 두고 고장 수리를 신청하기는 어려웠다. 영상은 처음에 흩날리는 눈송이처럼 시작되었다. 한두 개 눈송이 같은 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한꺼번에 쏟아지는 산태바기 폭설로 바뀌었다. 눈송이 같은 것들은 렌즈 앞에서 광란의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방향을 가리지 않고 마구 날뛰었다. 집을 통째로 뒤집어 놓을 듯이 광폭하게 부는 바람이 카메라가 달린 야트막한 처마 아래 몰아치고 있었다. 눈송이들은 한 서린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눈이 내리기에는 아직 이른 계절이었다. 설령 눈이 내린다 하더라도 어떻게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의 기억은 나날이 혼미하고 가끔은 현실에서 꿈속의 일을 보니 종잡을 수 없지만 어떤 이유로 한밤중의 난무는 이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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