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보여주는 영상은 참담했다.형은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형은 서울에 가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형이 혼자 있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혼자 있는 형을 바라보는 것은 내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눈물로 물크러진 눈으로 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메라는 초점을 잃고 위 아래로 흔들린다. 눈물의 무게에 짓눌린 어머니가 후회로 꼭 쥔 손을 펴지 못한다. 음험한 냄새를 풍기는 아이들이 형을 둘러싸고 웃는다. 형은 아이들에게 맞지 않기 위하여 어머니에게 손을 내민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구슬려 밥상을 차려내고 아이들은 형을 밀어내고 밥을 먹어 치운다.
“아버지는 내가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기댈 곳이 없었어. 성공하는 것 말고도 다른 일이 많았을텐데 오로지 성공만 바라는 부모가 원망스럽기도 했지. 이제와 깨달은 거지만 성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어. 성공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하는 거고 나머지는 절대 성공할 수 없어. 나는 호되게 당한 후에야 그걸 알았어. 돈 벌려고 동분서주 하며 살지 말아라. 주어진 대로 살면서 가족들을 돌봐라. 돈 없이 살아도 살 길은 얼마든지 있다. 내가 너에게 남기는 유언이다. 이제는 홀가분하다. 다 망가져서야 깨달으니 내가 바보지.”
형은 씁쓸하게 웃었다.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형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카메라는 어렴풋한 기억들을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간암 진단을 받은 후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형의 가족들과 동해 바다에 여행을 갔다. 바닷바람이 심하게 부는 백사장에서 우리는 가족 사진을 찍었다. 형의 여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카메라는 흰 파도가 부서지는 백사장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형을 보여준다. 형은 어쩐지 미안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 얼마 후 형의 장례식이 통곡 속에서 치러졌고 어머니는 며칠 후부터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형이 가 버리고 난 후 어머니는 화가 난 것 같았다. 말을 극도로 줄이고 침묵 속에서 혼자 있기를 원했다. 가족들 모두 힘든 시절이었기에 어머니의 마음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가 농사 짓던 땅들은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어 일터에 나갈 필요가 없었지만 어머니는 집 근처에 조그만 땅을 빌려 농사일을 계속했다. 일하지 말고 집에서 쉬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잘 된 일일지도 몰랐다. 우울감에 젖어 집안에만 머무는 것보다 힘들지 않은 정도로 밭일이라도 한다면 건강에 이로울 것 같았다. 카메라는 햇빛가리개 모자를 쓰고 밭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멀리서 보여준다. 텃밭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평온해 보인다. 힘든 시절이 있었지만 환란은 끝이 났고 세월은 빠르게 흘러 어머니의 여생이 안마당에 낙엽처럼 쌓이면 슬픔도 잊혀지는 것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