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에 박힌 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해 드리고자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간다. 카메라는 일주일 간 빈 집을 지키고 고양이는 밥을 얻어먹으러 이웃집 순례를 한다. 여행은 길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다녀온 후 힘에 부쳐 몸살을 앓는다. 가지 말았어야 할 여행이었던가. 급기야 회복하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한다. 응급실에서 어머니는 링거를 맞고 있는데 침대 양쪽에 세워놓은 보호대를 꼭 붙잡고 있다. 나중에 들으니 마지막 가는 길 같아서 보호대를 꼭 붙잡고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를 만나는 일이 무섭지는 않았지만 집에 할 일을 두고 온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의 할 일은 무엇일까. 카메라는 어머니의 일을 알고 있을까. 자정이 되면 나타나는 산란(散亂)하는 입자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낡은 집은 쇠약한 몸을 간신히 추스리고 아직은 조용한 마을에 더 머물 작정인 것 같았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어머니의 일과는 더 단조로웠다. 끼니를 챙겨주는 요양보호사의 근무 시간이 늘었고 어머니는 고양이를 앞세워 두 집 남은 이웃 노인들에게 마실을 가는 게 일상의 전부였다. 간신히 버티는 형국인 집의 모서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뜨거운 여름과 얼어 붙는 겨울을 반복하며 집은 세월과 함께 쇠퇴했다. 급기야 약한 부분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걸음걸이는 보폭이 짧아지고 정신은 느슨해졌다. 정밀한 뇌사진을 찍어보면 어머니의 뇌는 쪼그라들어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다. 엉성한 뇌세포 구조들 틈새로 스산한 바람이 불고 어머니는 종내 길을 잃을 것만 같다. 자꾸만 주저 앉으려는 집을 꼭 붙들고 있는 거 외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