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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텐츠스튜디오H Jun 18. 2020

갑질의 정의

 세상 모든 노동자를 향한 조롱

아파트 경비원께서 또 돌아가셨다. 그는 억울한 심경을 음성 유서로 남기고 일하던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사실 오랜 시간 당한 것도 아니고 아파트 주민들 또한 경비원을 돕는 데 적극적이었다. 정 안되면 그 가해자 요구대로 경비원을 그만 두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느꼈던 것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최대치의 수치심과 자괴감일 것이다. 평생 동안 굳게 믿었던 나의 성실함과 정직함이 무시당했고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도 지키고 있었던 직업의식이 뭉개져버린 것이다. 

부러진 그의 코뼈는 언제가 회복은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죽음을 택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평생 자신의 한쪽이 떨어져 나간 듯, 영원히 회복되지 않은 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이는 일을 그만둔다고 해서, 그 가해자를 마주치지 않는 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갑질은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중범죄이다. 그의 죽음에는 분명 가해자의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은 상해진단서 한 장으로 간단하게 설명될 수 없었다.  


그는 분명 경비원이라는 직업을 사랑했고 조금이라도 업무를 잘해보려고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다. 화장실과 주방이 섞여 있는 기이한 공간에서 일을 하면서도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그는 경비원으로서의 삶을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정직하고 성실한 노동자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처럼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힘든 삶의 방식을 택한 그였고 그는 그렇게 묵묵히 살고 있었다. 


갑질은 분명 물리적인 폭행을 넘어선 것이다. 폭행의 잔인함보다 더 깊이 영혼의 깊숙한 폐부를 찌르고 후벼 파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어쩌면 영원히 아물지 않을지도 모른다. 돌아가신 경비원에 비하면 내가 겪은 건 그나마 가벼운 감기 정도 일 것이다. 하지만 그 감기의 후유증조차도 나는 아직 벗어나지 못한 채 지내고 있다. 

퇴사 한 지 3개월이 넘어서고 있는 지금까지도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떨쳐지지 않는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해보려고 해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워 미뤄두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통장 잔고가 서서히 비어 가는 이 순간에도 다시 취업을 한다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갑질을 당하기 이전과 이후의 나는 달라져 버렸다. 나도 그저 성실하고 정직한 노동자로 살고 싶었을 뿐이었고 가해자는 이런 나를 보란 듯이 조롱했다. 이로 인한 정서적인 상처는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온전히 혼자,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남는 것이다. 


가해자는 분명 잊고 잘 살 것이다. 그저 인생의 해프닝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어디에선가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떠들어댈 것이다. 내가 일했던 자리에 새로 채용된 사람을 앉혀놓고 나를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한다.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당신의 그 잘못된 언행들은 꼭 본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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