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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텐츠스튜디오H Apr 27. 2020

좋은 공무원, 나쁜 공무원, 이상한 공무원

 가해자는 나쁘고 이상했다 

내 선택은 최선인가 
지금이라도 참고 견뎌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견디면 상황은 나아질 것 인가 
퇴사한다면 재취업은 가능할까


자기 검열의 늪에 빠지다

퇴사를 앞두고 처절한 자기 검열의 시간이 이어졌다. 가해자가 문제라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가해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조직으로부터 받은 2차 가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더 이상 이 조직에서의 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나의 이성은 분명 퇴사로 결론이 내려졌지만 나의 감정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 감정의 얼굴은 아쉬움이었다가 미련이었다가 우울과 불안이었다가 수시로 얼굴을 바꾸면서 나를 힘들게 했다. 


그 아쉬움과 미련의 가운데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나를 '갑질 신고자'가 아닌 내가 듣고 싶었던 '전문가'라고 불러 줬던 사람들이었다. 


여러분들과 같이 일해서 너무 좋았다며 처음으로 인정해주었던 과장님 

다른 공무원들도 여러분들처럼 일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줬던 사무관

계속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며 끝까지 퇴사를 만류했던 또 다른 사무관 

공무원 조직도 바뀌어야 한다며 같이 안타까워해 줬던 젊은 주무관 


좋은 공무원, 나쁜 공무원, 이상한 공무원

분명 그들은 '좋은 공무원'이었다. 나를 인정해줘서, 이 문제에 대해서 내 편을 들어줘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공무원 조직의 폐쇄적이고 경직돼 있는 문화에 대해서 같이 안타까워하는, 진짜로 조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진심으로 이 문제가 정당하게 해결되길 바라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공무원의 역할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었고 업무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일을 하는 공무원들이었다. 내가 냈던 세금이 하나도 아깝지 않게 일을 하는 분들이었다. 만약 내가 공무원으로 계속 일을 하게 된다면 정말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내가 공무원을 하려고 했던 이유, 내 경력을 살려서 공익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나름 진지한 목적에 딱 부합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공무원 생활은 정치력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부류도 있었다. 업무 능력으로 본인을 어필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그게 아니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일을 하는 것보다 술자리 한 번 더 참석하는 게 이 조직의 생리라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이었다. 술 먹고 들어와 초과근무를 찍고 퇴근하는 법을 자랑스럽게 알려주던 사람들이었다. 사내 정치를 통해 평판을 다지고 승진을 하는 게 이 사람들이 일하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철밥통 하나 마련하려고 공무원이 된 게 아니었다. 


가해자 역시 그런 부류 중에 하나였고 끈질기게 술자리 참석을 강요했다. 재계약을 위해서는 임기제 공무원들은 이래야 한다며. 

실세를 소개해준다며 알지도 못하는 나이 많은 남자 공무원들과 술자리를 마련하기도 하고 가기 싫다는 노래방에 억지로 끌고 가기도 했다. 업무상 외출인 것처럼 해놓고 점심시간에 술자리를 갖기도 했다. 정말 앉아있기 힘들어서 술자리에서 일찍 일어나면 다음 날 어김없이 몇 시간 동안 질책을 들어야 했다. 같이 술 먹었던 사무관이 엄청 화가 났다며 이제 어쩌냐며 사과를 하던가 하라고. 하지만 정작 그 사무관은 본인은 화낸 적이 없다고 했고 그럴 수도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가해자는 본인의 사내정치를 위해서 우리를 병풍처럼 이용하고 싶어 했다. 가해자는 나쁘기도 했지만 이상하기도 했다. 


나는 왜, 어쩌다 공무원이 되었을까. 

나는 분명 목적이 있었고 계획이 있었으며 내 업무에 대한 전문성도 있었다. 하지만 가해자는 이 모든 것을 오직 본인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고 했다. 갑질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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