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사람을 죽이는 법
언니처럼 잘해줬는데.. 뭔가 오해가 있었어요
조직을 잘 이끌려다 보니 욕심이 과했나 봅니다
너무 좋아서, 애정 하는 마음에...
저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어요
갑질 뉴스 보도가 나가고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자 가해자는 우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과했다. 같은 팀 팀원들과 하루에 한 명씩 점심 약속을 잡고 본인의 억울함을 쏟아냈다.
본인은 우리에게 잘해줬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갑질이 아니라 팀을 잘 이끌어 보려는 본인의 노력을 우리가 오해한 거라 했다. 하지만 잘못한 것도 있으니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도 했다. 자리가 마련된다면 사과할 생각도 있다고 했다. 본인은 충분히 사과할 준비가 되었다면서.
저 모든 말들을 전해 듣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폭력이었다. 그리고 본인에게 불리해진 상황에서 하는 사과가 과연 진정성이 있는지 의문이었다.
모든 말과 행동에는 그 사람의 나침반이 들어 있다. 말은 좀 서툴러도 행동은 좀 거칠어도 그것만으로는 다 설명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방향을 읽을 수 있다. 그 사람의 눈빛과 표정, 손짓, 나의 이야기를 듣는 태도에서 그 사람이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알 수 있다. 혹시 그 사람이 실수를 해서 잠깐 방향을 잃더라도 어디로 가려다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다. '실수'라는 말을 그럴 때 쓰는 것이다. 가해자는 '실수'라고 했지만 분명 그의 말과 행동은 실수가 아니었다. 그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너무나 분명했다. 나를 비난하고 억압함으로써 본인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의 정확한 방향이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다’
‘나한테 100% 못 맞추면 나가라’
‘애는 너만 키우냐’
‘당신이 여기 있어서 불쾌하다’
‘프리랜서들이라 책임감이 없다’
'임기제 공무원들은 조직의 입양아다.'
가해자의 변명대로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아끼는 마음에 저런 말을 했다면 나는 분명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 거칠고 무례한 말들은 그냥 그 자체로 가해자의 방향과 태도였다. 가해자는 서툴지만 애정을 담은 말이나 거칠지만 진정성이 배인 행동 같은 건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본인의 감정을 정제해서 전달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본인의 감정이 곧 태도와 방향으로 정해졌다. 모든 업무의 방향도 본인의 감정 상태로 정해졌다. 업무 일정을 갑자기 앞당겨 주말에 독촉 전화를 하는 것도, 다른 부처와의 협업을 갑자기 중단시키는 것도, 업체와의 계약을 갑자기 뒤집는 것도 기분이 안 좋기 때문에 혹은 기분 안 좋은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분노들은 우리에게 폭언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그 분노의 원인도 모른 채 가해자의 말로 매일매일 맞았다.
말은 내뱉자마자 흩어지는 무형의 것이 아니었다. 말은 때로는 바늘이 되어 계속 찌르기도 했고 둔탁한 몽둥이가 되어 한 대 크게 때리기도 했다. 말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까짓 말 한마디가 아니었다. 폭언들을 듣고 나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기도 했고 악몽을 꾸기도 했다. 그 말들로 인해 나의 일상은 무너졌으며 매일매일 이유 없는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상담 선생님은 이런 나의 증상이 불안장애에 가깝다고 했다. 나는 말로 크게 맞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