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일 잘하면 좋은 거지 왜 그럴까.
이 일을 겪지 않았다면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무원 조직은 잘 꾸며진 정원 같았다. 보기엔 이렇게 아름답고 예쁠 수가 없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과 나무들이 자연 그대로 자라는 습성을 최대한 다듬고 다듬어 보기에 아름답도록 끊임없이 관리한다. 조금이라도 어긋나게 자라난 가지들은 쳐내버리고 가끔 자리를 벗어나 피어있는 꽃들도 잘라내 버린다. 그렇게 해서 유지되고 있는 정원은 나름대로 아름다웠다. 나는 뒤늦게 정원에 들어왔고 잘 어울려보고 싶었다. 갑질로 신고를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공무원들이 보기에 나는 꽤 튀는 존재였다. 협업 회의를 위해 다른 부서를 방문할 때면 칭찬인지 뭔지 모르는 인사를 건넸다. 어떤 공무원은 정말 반갑고 기대되는 마음에, 또 어떤 공무원은 공직 분위기를 모르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담고 저 희한한 말로 첫인사로 건넸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저 말을 칭찬처럼 건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공무원 조직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유연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굳이 공무원스럽지 않아도, 내 방식대로 일을 해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갑질을 당하면서도 조직은 내 얘기를 들어줄 것이라 믿었다. 시스템 안에서 보호받으면서 내가 처했던 부당한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조직을 믿었고 그래서 감사실에 가해자를 갑질로 신고했다.
가해자의 갑질 때문에 그만둔 직원들이 이전에 4명이나 더 있었고 산하기관에 갑질한 경력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마일리지라고 생각하고 가해자의 갑질을 우리 손으로 끝내고 싶은 비장함도 있었다.
아무리 공무원 조직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면 우리 이야기를 최소한 외면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무너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신고하자마자 우리의 신상과 신고내용이 순식간에 퍼졌으며 직급이 꽤 높은, 우리와는 일면식도 없는 공무원이 갑자기 사무실로 찾아와 내 업무를 다짜고짜 묻는 일도 있었다. 가해자의 측근들이 신고를 취하하라며 설득인지 협박인지 모를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우리는 순식간에 ‘신고자’가 되었다. 그리고 감사실 담당자는 신고한 뒤 한 달 정도면 징계 여부 등 결론이 날 것이라 얘기했다. 하지만 조사는 점점 늦어졌고 석 달이 지나서야 가해자의 직급이 4급이라 인사혁신처 징계위원회에 회부가 되고 거기서 징계에 대한 결론이 난다고 알려주었다. 게다가 회부가 되고도 최소한 몇 달은 더 기다려야 했다.
가해자는 측근들을 동원해 열심히 술자리를 만들어 본인을 변호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감사실에서는 조사가 왜 늦어지는지, 진행상황은 어떤지 먼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우리가 먼저 가서 물어봐야 겨우 알려줬다. 이렇게 조사가 늦어지는 동안 가해자의 갑질은 다시 진행되고 있었다. 가해자는 신고 이후에도 여전히 업무 보고를 독촉하고 출장, 연가 등 복무 결제까지 하고 있었다. 심지어 가해자와 계속 같은 공간에서 업무를 해야 했다. 우리가 바라던 합리적이며 논리적이며 시스템에 의한 대응은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했던 신고는 조직에 대한 반항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