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콘텐츠스튜디오H Mar 26. 2020

트와이스의 노래를 들으면서 울어본 사람!

갑질은 분명 폭력이다. 감정 폭력!

평소에는 어디 있는지 조차 몰랐다가 크게 한 번 아픈 다음에야 그 존재감이 느껴지는, 내 몸 어딘가에 있는 장기들처럼 나의 감정 또한 그랬다. 평소의 나는 분노도 슬픔도 자괴감도 잘 느끼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동안 이렇게 큰 분노나 슬픔, 좌절, 우울을 느끼면서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에 새삼 놀라면서 뜬금없이 감사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나의 감정에 폭력을 가했고 나는 크게 상처 입음과 동시에 그 존재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매일매일 들끓어 오르는 분노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매 순간 밀려오는 우울감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너무나 조용한 사무실과 복도, 직원들의 모습이 때로는 무섭기까지 했다. 나는 이런 감정들이 너무나 낯설었지만 그들은 분명 나의 감정이라는 것들이었다. 다들 그동안 어디 있었는지 왜 꼭 이렇게 크게 한 대 얻어맞아야지만 존재를 드러내는 것일까. 그리고 그 감정들은 엉뚱하게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전혀 공포스럽지 않은 상황에서 공포를 느끼고 전혀 슬프지 않은 상황에서 슬픔을 느꼈다. 나처럼 트와이스의 노래를 들으면서 울거나 조용한 사무실에서 누가 갑자기 나를 때릴 것 같은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확실히 고장 난 사람이었고 감정적으로 크게 다친 사람이었다.


감사실에 갑질 신고를 하고 첫 번째 면담 자리에서 담당자는 판단하기 애매하다며 혹시 어디 맞은 적 없냐고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어디 맞거나 더 센 욕설을 들었다거나 그런 걸로 증거를 주세요. 이게 너무 약해’ 


공개적인 자리에서 욕설을 한 것이

본인에게 100% 맞추지 못하면 나가라는 말이

수시로 했던 재계약 못 한다는 협박이

어디서 뭐하다 왔는지 모르겠다는 조롱이

프리랜서라서 책임감이 없다는 비난이

'애는 너만 키우냐'라는 폭언이

'네가 이 회의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불쾌하다'는 말이

저 사람이랑 일하지 말라는 협박 섞인 업무 지시가 

그저 ‘약하다’고 했다. 


나는 충분히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했지만 담당자는 그저 ‘약하다’는 말 한마디로 별 것 아닌 것으로 취급해버렸다. 나를 정서적으로 학대했던 가해자의 모든 행위들이 ‘약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공공기관에서 있었던 사례를 언급하며 한 대 맞는 게 더 깔끔하다고 했다.  팔이 부러지고 얼굴에 시퍼런 멍 자국이 있어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깔끔하게 인정된다는 말이었다. 그럼 우리는 지저분한가. 

그리고 업무도 많아 죽겠는데 말년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며, 피해를 당했다고 신고를 한 당사자 앞에서 본인의 업무량에 대한 하소연도 덧붙였다.  

이미 조사 담당자의 기대 이하의 능력과 한참 모자란 조사 의지는 눈에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수십 대를 맞은 것과 똑같은 상태였다. 수시로 사무실에서, 복도에서, 화장실에서  가해자를 마주치면서 하루 종일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일을 하면서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눈물이 났다. 집 앞에서 가해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말도 안 되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가해자는 나의 감정에 나의 정서에 나의 정신에 수차례 폭력을 가했고 나는 모든 감정들이 부러졌고 피멍이 들어 있는 상태였다. 가해자의 행위들은 분명히 폭력이었다. 하지만 조직에서는 그저 ‘약하다’는 말뿐이었다. 

이전 05화 세상 모든 갑질러들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