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콘텐츠스튜디오H May 04. 2020

세상 가장 찐한 멜로

'조직'과의 이별

뭔가 나쁜 남자와의 지독한 연애를 끝낸 느낌이랄까. 혹은 나 혼자 했던 처절한 짝사랑의 끝이었을까.

퇴사를 마음먹고 난 다음부터 드는 여러 생각들은 마치 연애의 끝을 향해 뚜벅뚜벅 걸아가는 느낌이었다. 나와 조직 사이에 이런 진한 멜로가 존재할 줄이야.


나와 조직, 우린 참 별나고 이상한 사이야

분명 나한테 쌀쌀맞고 내 연락도 피하고 내 편도 들어준 적 없었다. 내가 가장 힘들 때에는 오히려 남들보다 못한 말과 행동으로 내 속을 뒤집어 놓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은 말할 수 없는 안정감과 짜릿한 성취감을 선물해주기도 했었다. 그게 함정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대화를 하게 되면서 점점 서로에 대해 의심과 분노가 쌓여 갔다.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냐며 다그쳐도 보고 애원도 해 보았지만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쌀쌀함은 분명 이유가 있다고 믿었고 나는 끝까지 잘해보고 싶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 그에게 내 진심을 표현했고 분명 언젠가는 진심이 전달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서히 이별하고 있었다. 관계를 위해 노력했던 뜨거움도 서서히 식어 재만 남게 되었다.  



'퇴사'라는 마지막 카드 

내가 속한 조직에 대해서 이런 절절한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간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큰 어려움 없이 지냈기 때문에 나와 조직 간에 '감정' 이 오고 가는 이런 경험이 낯설었다.

과연 나에게 '조직'은 어떤 존재였을까. 분명 나는 이 곳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바꿔보고자 용기 내서 신고를 했다. 공무원 조직은 경직되어 있다, 폐쇄적이다, 보수적이다 이야기해도 일단 내가 속한 조직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좋아지길 바랬다. 그리고 그럴 의지와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퇴사'라는 카드는 꺼내 들고 싶지 않았다. 가해자만 제대로 처벌을 받는 다면 이제까지의 일은 다 용서해줄 수 있는 여유와 배포도 나름 있었다.


신고한 사람이 징계 결과를 알 수 없다!

갑질 신고를 하고 난 뒤, 8개월 동안 징계 결과 하나만 바라보고 버텼지만 정작 우리는 결과가 언제 나왔는지, 어떻게 나왔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피해자이자 신고자인 우리가 그 징계 결과에 대해 공식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감사실 담당자는 '개인적으로' 징계 결과를 알아보라고 했다.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공무원들이 신봉하는 '공문'으로 보여주며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징계 당사자의 허락 없이 타인에게 결과를 알려 줄 수 없다 

하지만 나중에 알아본 결과 '의지'만 있다면 우리에게 징계 결과를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가해자는 신이 나서 본인의 징계 결과를 말하고 다녔다. 결국 '공식적으로' 징계 결과를 알지 못했고 가해자가 퍼트려주는 '소문'으로 그 결과를 알게 되었다. 결과는 정말 터무니없이 낮게 나왔다. 누군가는 징계 수준도 아니라고 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분노와 배신감, 슬픔, 억울함이 몰려왔다. 1년 넘게 묻어 두었던 '퇴사'라는 카드가 떠올랐다.


퇴사를 결심하고도 '조직'을 이해해 보려 했다.

이런 갑질 신고가 처음이라,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담당자의 업무가 많아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보려 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런 노력을 조직은 알고 있었을까. 이제는 더 이상 가해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징계 결과 따위는 몰라도 그만, 낮게 나와도 그만이었다.  조직에 대한 여러 가지 감정이 순식간에 분노와 배신으로 정리가 되었다. 이제는 진짜 헤어져도 될 것 같았다.

   

이전 03화 갑질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