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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텐츠스튜디오H Mar 23. 2020

갑질의 추억

퇴사 첫째 날

나는 과연 무엇을 잘못했을까. 

그리고 나는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1년 반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겪으면서 역설적이게도 나는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이제까지 살아왔던 방식,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들,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고 했던 원칙들, 너무 당연해서 의심하지 않았던 상식들이 이 곳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나의 장점은 단점이 되었고 단점은 더 큰 단점이 돼버렸다. 

나는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프리랜서 형태로 일을 해왔다. 언제든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지만 언제든 일이 없을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가진 무기는 성실함밖에 없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일하고 거짓말하지 않고 시간 약속 잘 지키면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매 순간 한 땀 한 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대치를 끌어올려 일했다. 하지만 가해자에게 이런 성실함은 곧 미련함이 돼버렸고 가해자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가해자는 나의 미련한 성실함을 이용해 나를 이용하고 갖은 협박을 했다. 

공무원으로 임용된 지 5일째 되는 날, 1억짜리 사업의 업체 계약 건을 맡겼다. 우리 팀원 중 7년 차 공무원도 업체 계약 건은 해본 적이 없었다. 또 나는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 해서든 해보려고 했지만 당연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 업무도 아니었다. 내가 버벅대면서 일을 하자 가해자는 팀원들 앞에서 공개적인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것도 모르냐고, 도대체 뭘 하다 온 거냐고' 

이제 임용된 지 일주일째였다. 가해자의 비난은 늘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인정받고 채용되었지만 경력과 관련된 일이 아닌 것으로 비난받기 시작했다. 가해자의 방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할 수 없거나 내가 안 해도 되는 일, 혹은 도저히 일정을 못 맞추는 일들을 시켜놓고 못 하기만을 기다렸다가 공개적인 비난을 했다. 이렇게 괴롭혔던 원인은 여러 가지였다. 내가 여자라서, 프리랜서 경력밖에 없어서, 계약직이라서. 일을 못한다고 그냥 구박받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가해자를 믿었다.  업무에 욕심이 많은 능력 있는 상사라 믿었고 힘들지만 믿고 따르면 성과도 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나의 공직생활 첫 번째 상사였으니까. 가해자는 이런 나를 철저히 이용하고 협박했다. 내가 공무원이 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인 것처럼 늘 ‘계약’을 가지고 이야기했다. 

‘이러면 재계약이 힘들다’

‘다른 데 옮길 때 안 좋은 얘기 해버리겠다’

가해자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공무원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무식하게 일 밖에 할 줄 모르는, 이용 해 먹기 좋은 계약직. 나의 성실함과 믿음은 가해자에게 미련함이 되어 버렸다. 

직장 내 괴롭힘, 갑질은 이런 것이다. 나의 삶의 가치가 부정당하고 진정성이 훼손되는 것. 서서히 자존감을 갉아먹혀서 나중에는 없어져 버리는 것. 나는 거의 매일매일 감정 폭력에 시달렸다. 

차라리 어쩔 때는 한 대 맞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가해자가 폭력은 은밀하면서도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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