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창가에 비친 진실, 그들의 감정이 보인다"
"그는 나의 스승이었어요."
이서연 교수의 말이 연구실에 울렸다. 책장 가득 꽂힌 심리학 서적들이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는 듯했다. 교수의 얼굴 위로는 여전히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연한 황금빛(회상, 45%)과 진한 회색(긴장, 55%).
"스승님은..." 교수가 잠시 말을 멈췄다. 얼굴 위로 짙은 파랑(그리움, 82%)이 번졌다. "감정을 읽는 능력을 가진 최초의 관찰자였어요. 적어도 우리가 아는 한에서는."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한 시간 전만 해도 평범한 심리학과 학생이었는데, 갑자기 이런 초자연적인 이야기에 휘말리다니.
"이해하기 어려울 거예요." 교수가 말을 이었다. 얼굴에서 짙은 파랑이 옅은 황금빛(이해, 58%)으로 바뀌었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있어요. 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그때였다. 밖에서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도서관에서 뛰어내리려고 해요!"
"빨리 신고해요!"
"저기 봐, 4층이야!"
우리는 동시에 창가로 달려갔다. 중앙도서관 앞 잔디밭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도서관 4층 창문에 한 여학생이 서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이 능력의 진짜 무게를 느꼈다. 수십 명의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검은 보라(공포, 85-92%), 짙은 파랑(불안, 75-88%), 탁한 녹색(혐오, 45-65%)... 그리고...
"저기." 내 목소리가 떨렸다. "저 사람들 중에..."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나요? 진한 주황빛."
군중 속 세 명. 그들의 얼굴에서 번지는 진한 주황빛(만족감, 92-98%). 다른 이들의 공포와 불안과는 완전히 다른 감정이었다.
"교수님, 저 사람들은..."
"그래요. 저들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어요."
교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회색(긴장)이 검은 회색(결의, 95%)으로 변했다.
"가보시죠." 교수가 재빨리 가방을 들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당신의 능력은 양날의 검이에요. 진실을 본다는 건, 그만큼의 책임을 진다는 뜻이니까."
도서관으로 달려가는 동안, 머릿속이 복잡했다. 창문에 선 여학생은 심리학과 3학년 한지아였다. 수업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후배. 그녀의 얼굴에서는 짙은 파랑(절망, 92%)과 검은 보라(공포, 85%)가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이상한 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지아야, 제발 거기서 내려와!"
"누가 좀 말려요!"
"소방서는 언제 오나..."
걱정스러운 외침들. 하지만 그들 중 몇몇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진한 주황빛이 번졌다. 특히 지아의 친구라고 하는 세 명의 얼굴에서 그 빛이 가장 강했다.
그때 이서연 교수가 내 팔을 잡았다.
"민우 학생, 잘 보세요. 지아의 감정만이 아니라, 미세한 표정 변화도 놓치지 마세요. 당신의 능력으로 볼 수 있는 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지아의 얼굴에서 감정색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절망과 공포가 스러지고, 대신 진한 회색(결심, 98%)이 번졌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녀의 손목에 선명한 붉은 자국을.
누군가가 강제로 붙잡은 흔적.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너무 많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이건 단순한 자살 시도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아니, 저 주황빛을 뿜어내는 사람들이...
"교수님." 내 목소리가 떨렸다. "지아는 지금 위험한 게 아니에요. 겁에 질린 거예요. 저들 때문에."
"알고 있어요." 교수의 얼굴에서 검은 회색이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요. 당신이 가야 해요."
"제가요?"
"당신은 지금 그들의 진심을 볼 수 있어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죠."
나는 망설였다. 겨우 몇 시간 전에 생긴 능력이었다. 아직 제대로 통제할 수도 없는데... 하지만 지아의 얼굴에서 번지는 공포와 절망이 가슴을 옥죄었다.
"알겠습니다."
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4층으로 향하는 동안 귓가에서 심장 소리가 울렸다. 처음으로 이 능력으로 뭔가를 해야 한다. 뭔가를... 바꿔야 한다.
4층 복도에 도착했을 때, 지아는 이미 창틀 위였다.
"지아야."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선배..."
"괜찮아. 내가 다 봤어. 네 진심을."
지아의 얼굴에서 회색빛이 옅어졌다. 대신 연한 파랑(안도감, 45%)이 번지기 시작했다.
"선배는... 어떻게..."
"네가 겪은 일, 네가 본 진실... 이제 혼자가 아니야."
그때였다.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새어나오는 감정은... 순수한 증오(검은 빨강, 99%)였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너무 강한 감정이었다.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런 순간에 능력이 약해지면 안 되는데...
하지만 선택은 이미 끝났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능력으로 해야 할 일을.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