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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Sep 16. 2022

10. 불건강한 정신, 불건강한 신체

충격적인 건강검진 결과지와 정신과 심박 변이 검사

휴직 전에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가 도착했다. 비록 정신건강이 무너지긴 했지만, 그래도 신체까진 무너지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회사에서 힘든 와중에도 점심시간마다 약속이 없으면 근처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 저녁 퇴근길에는 일부러 공공자전거를 타고 40분씩 달렸다. 사람들과의 자리를 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자리도 거의 가지 않았다. 나름대로는 직장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건강관리를 하고 있었다고 자부했다.


결과창을 열고나니 당황스러웠다. 검진에서 처음 보게 된 용어들이 눈에 띈다. '이상지질혈증'.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나 있다는 경고다. 방치하게 되면 동맥경화의 원인이 될 수 있어 당장 진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적혀있었다. '공복혈당장애'라는 단어도 있었다. 정상과 당뇨의 중간단계이니 당뇨가 오기 전에 식습관과 운동에 신경 써라고 한다. 이 외에도 가벼운 수준의 지방간이 의심된다고 했다.


지난번 건강검진 때에는 전혀 없던 증상들이다. 게다가 정신 건강이 무너져 가는 와중에도, 신체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이 결과가 몹시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우선 가장 시급한 콜레스테롤 문제 진단을 위해 내과에 방문했다. 검진 결과 문서를 선생님은 곧바로 나이부터 물어보셨다. 심각한 상황이긴 하나, 바로 약을 쓰기엔 젊은 나이이므로 우선  당장 생활 습관을 바꿔보자고 하셨다. 특히 콜레스테롤 관련 문제는 식이요법보다 운동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두 달 후 다시 혈액검사를 해 보기로 약속을 잡고 병원을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기간에 이렇게까지 몸이 망가진 이유는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정신과를 오가면서 봤던 '심박 변이 검사'를 떠올렸다. 심각한 스트레스가 부교감신경 등에 영향을 주면 당뇨병, 고지혈증, 비만을 유발할 수 있어 이를 확인해보는 검사다. 놀랍게도 지금 진단받은 증상들과 너무나 유사했다. 서둘러 정신과에 전화를 걸고, 다음 진료일에 심박 변이 검사를 받기로 했다.


심박 변이 검사는 그동안 진행한 다른 심리검사와 성격이 달랐다. 기계를 통해 몸의 상태를 체크하는 방식이므로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된다. 다만 해당 검사는 비급여 항목이므로 진료비와 별도의 검사비가 부과되었다.

진료실에서 결과지에 대한 해석을 들었다. 영화에서 많이 보던, 심장이 뛰는 그래프가 보였다. 그래프의 높낮이가 커야 건강한 상태라고 하는데, 결과지의 그래프는 고요한 호수처럼 거의 변동이 없었다. 


선생님께서 그동안의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검사 결과를 해석해주셨다. 다행히 현재의 스트레스 수준은 높지 않다. 그런데 특정한 상황에서, 예를 들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할 때 갑자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사실 휴직 전에 나타났다 사라진 것만 같던 가슴의 통증은 회사 근처에 가면 다시 나타났다. 그래서 아예 회사 근처에도 가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가 심박 변이 검사에도 나타난 것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정신적 문제로 건강이 악화되었던 것이다. 과연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면서까지 이 일을 해야 할까? 점점 머릿속에 의문이 커져갔다. 간접적으로 듣는 동료들의 고통, 생각할수록 커지는 업무에 대한 회의감 등과 검진 결과가 시너지를 내면서 복직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지금은 푹 쉬면서 식단과 운동을 꾸준히 하면 아직 젊은 나이라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또다시 회사에서 몸을 망가뜨린다면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다. 


조심스럽게 휴직 기간 이후의 선택에 대해 의사 선생님과 상의를 했다. 선생님은 우선은 현재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은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말자고 하셨다. 실제로 우울증을 앓고 있을 때는 퇴사, 이직과 같은 중요한 판단을 가급적 내리지 말라고 한다.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다 보니 충동적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바로,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다.


건강한 신체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이 참이라면,


불건강한 정신이 깃들면 신체가 불건강해지는 것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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