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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Sep 14. 2022

8. 맥주 대신 탄산수, 커피 대신 허브차

알코올과 카페인 끊어내기

20살이 되어서야 제대로 마시게 된 술과 커피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도 썼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쓴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먹는다는 것일까? 물론 이 쓰디쓴 세계에 적응하는 것에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학교 앞에 위치한 근사한 카페들은 허름한 자취방을 겨우 구했던 나에게 있어 때로는 응접실이었고, 때로는 공부방이었다. 그리고 모름지기 대학생이라면 밤에는 술잔을 기울이며 연애, 미래, 인생에 대한 고민을 나누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커피와 술은 또 다른 나의 벗이 되어갔다.


조금 시간이 지나, 진로를 고민하다 시험을 준비했다. 알코올과 카페인은 고단한 공부를 버티게 해주는 진통제가 되었다. 인강을 들을 때는 1L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졸음을 이겨냈다. 커피를 다 마시면 남은 얼음에 물을 가득 부어가며 정신을 차렸다. 커피와 함께 공부를 했다면, 술은 나의 휴식을 돕는 친구였다. 하루 종일 내용을 집어넣느라 터질듯한 뇌를, 자기 전 맥주 한 캔과 함께 유튜브를 보며 잠시나마 달래줬다.

직장인이 되었다. 카페인과 알코올과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져만 갔다. 이제는 체내에 카페인이나 알코올이 없는 것이 어색했다. 출근 직후, 점심시간, 오후 4시 3번에 걸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일을 하기가 힘들었다. 퇴근 후에는 직장 선배들과, 동료들과 술을 마셔야만 조직에서 생존하는데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나치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저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짊어져야 한다며 계속해서 합리화할 뿐이었다.



정신과 약물은 10년이 넘게 함께했던 커피와 술과의 관계를 청산하도록 만들었다. 갑자기 카페인과 알코올의 효과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이제 커피는 1잔만 마시면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두뇌를 각성시켰다. 소주 2병이었던 주량은 330ml 맥주 캔 하나도 마시기 힘들 정도로 줄었다. 심지어 컨디션이 나쁜 날에는 도수가 살짝 있는 무알콜 맥주를 마시고도 취기가 올라왔다.  


어차피 휴직을 했으니 억지로 잠을 깰 필요도, 술집에서 사람을 만날 일도 거의 없어 다행이다. 오히려 이미 중독상태인 두 약물로부터 벗어날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만 두 기호식품을 아예 없애버리기엔 커피 한 잔의 여유와 맥주 한 캔의 반주가 주는 즐거움을 놓칠 수 없었다. 대체재가 필요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디카페인 커피와 무알콜 맥주다. 조금 더 검색해보니 무알콜 와인이라는 녀석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저 식품들이 완전 카페인과 알코올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조금 더 확실한 친구들이 필요했다.

먼저 술의 대체제로는 탄산수를 선택했다. 탄산의 목 넘김이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욕망을 어느 정도 충족시켰다. 가끔 제로콜라나 제로사이다를 마시기도 하지만, 뒷맛이 남지 않는 탄산수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가향 제품을 마시면 은근히 맛있었다. 초등학교 때 과학수업을 통해 우리가 맛을 느낄 때는 냄새와 색깔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배웠다. 틀린 말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커피의 대체제로 떠오른 것은 차(茶)였다. 그러나 차 역시 카페인이 들어있는 것들이 많다. 디카페인 차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허브차 위주로 마시게 되었다.  마침 선물 받았던 다기세트도 있고, 차를 우려내어 마실 여유도 생겼다. 자연스럽게 집에서 마시는 디카페인 차의 종류가 늘어났다.

 

나의 경우에는 알코올보다는 카페인을 끊는 것이 힘들었다. 술의 경우에는 술 자체보다는 술자리의 분위기를 느끼고자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다 자리가 생겨도 술 대신 탄산음료를 마시면 되니 큰 문제는 없다. 기분 낼 때 와인을 마시지 못하는 게 딱 하나 아쉽긴 하다. (무알콜 와인이 존재는 하지만, 파는 매장을 거의 보지 못했다)


반면에 카페인의 경우에는 너무 오랫동안 많이 섭취해왔기에 금단증상이 느껴졌다. 커피를 마음대로 마신 것에 비해 늘 피로함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기분이다. 굳이 수치화하자면, 커피를 마실 때 피로도가 1이라면, 지금은 5~6 정도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어디선가 '지금 느끼는 피로함이 정상적인 수준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동안에는 카페인을 섭취했을 때는 온몸의 각성을 느끼다, 시간이 지나면 각성이 끝나서 늘어지고, 또다시 카페인을 섭취하는 행태가 반복되었다. 마치 카드 돌려막기로 순간을 넘기는 것처럼, 계속해서 두뇌 활성도를 억지로 당겨와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카페인과 알코올로부터 멀어진 지 두어 달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정도는 정신과 약으로 인해 선택한 길이지만 생각보다는 큰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두 약물에 지배에서 해방된 뇌가 개운함을 느끼는 기분이다. 솔직하게 피곤해서 커피를 마시고 싶은 순간도, 취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도 몇 번 있긴 했다. 그렇지만 마시지 않는 것이 익숙해지니 이것도 어느새 당연하게 여겨진다. 어쩌면 '어쩔 수 없다'라고 여긴 커피와 술을 마시는 행동이 그저 습관에 지난 것은 아닐까?


다시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면 지금처럼 술과 커피를 끊고 살기 어려울 수 있다. 어디에서나 강압적으로, 아니면 은근하게라도 술을 강권하는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지 않게 된다면 오후에 제대로 업무를 하기 힘들 것만 같다. 그러나, 돌아가더라도 이전보다 두 약물에 의존하는 것을 줄이려 의식적으로 노력할 생각이다.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의지를 다잡기 위한 말은 아니다. 

그저 진짜 나의 모습으로 느껴지는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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