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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Sep 15. 2022

9. 청소보다 요리가 재밌어

우울증을 극복하는 작은 성취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집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집안일을 하다 보면, 우울한 마음을 비울 수 있어 좋다. 주말마다 화장실 청소나 빨래로 날아가는 시간이 아까웠는데, 이제는 평일에 처리하고 주말을 온전히 가족과의 시간으로 보낼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건조기가 있어도 옷을 색깔별로 분리하고, 수건까지 별도로 빨면 하루가 금세 지나버렸다. 화장실 청소가 끝나면 운동한 것처럼 몸에 힘이 빠졌지만 며칠 있으면 다시금 더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청소와 빨래와는 달리, 하다 보니 계속 재미를 느끼는 일도 있다. 바로 가정의 식사를 책임지는 일이다.



 20살 때부터 자취를 했었기에, 조리대 앞에 서는 건 익숙하다. 특히 교환학생 시절에는 저렴한 식료품 덕분에 파스타 같은 간단한 요리를 자주 만들어 먹었다. 지금은 제대로 된 주방도 있고, 음식을 준비할 시간도 넉넉하다. 그래서인지 조금 더 요리 다운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마침 물가도 오르고 있어 생활비 절약 측면에서도 동기부여가 되었다.


요리의 지향점은 가족을 위한 맛있고 건강한 한 끼. 먼저 냉장고에 남아있는 건강한 식료품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정기적으로 못난이 야채를 배송받고 있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배송받은 야채 이름 뒤에 '요리'를 붙여 검색해보고, 만만해 보이는 음식을 만들었다. 집에 상시 구비되어있는 닭가슴살과, 코스트x에서 쟁여놓는 고기와 새우, 계란 등으로 단백질을 보충하고, 유튜버 승우 아빠의 조언을 따라서 각종 소스를 구비했다.


처음에는 간단하면서도 실패 가능성이 적은 요리를 도전했다. 예를 들면, 냉동 야채와 닭가슴살에 굴소스를 넣고 볶는 식이다. 별로 손질할 것 없이 불만 잘 지켜보면 완성된다. 귀여운 시도였지만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과, '가족이 맛있게 먹는다는 것'이 제법 뿌듯했다. 점점 요리에 대한 욕심이 커지면서, 손질된 재료보다는 본래의 재료를 이용하려는 마음이 커졌다. 아래 사진들은 그 기록들이다.


새우 리소토? 빠에야?. 비록 소스는 시판 중인 파스타 소스를 이용했지만 처음으로 지어놓은 밥이 아니라 생쌀을 이용했다. 그래서 쌀이 잘 안 익으면 어찌하나 걱정했고, 무사히 익은 밥을 보고 뿌듯했다. 


마스터셰프 USA를 보고 갑자기 뇨끼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저 작은 수제비 비슷한 녀석을 만드는데 한나절이 넘게 걸렸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의 과정을 거친다.


1️⃣감자를 삶아서 으깬다 2️⃣ 밀가루로 반죽을 만든다 3️⃣ 으깬 감자와 밀가루를 섞고 동그랗게 빚는다 4️⃣ 빚은 반죽을 삶은 후 프라이팬에 굽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방은 밀가루, 감자 껍질, 여기저기 묻은 반죽덩어리, 사용한 요리기구들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먹는 건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음식을 위해 만드는 시간은 물론 정리하는 시간까지... 파인 다이닝이 얼마나 정성을 들여 음식을 만들고, 그렇기에 왜 가격이 높은지에 대해 진심으로 납득하게 되었다.


실패한 요리도 많다. 배송받은 고추를 처리하기 위해 장아찌를 만들어봤다. 생김새만 보고 맵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고,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뇨끼를 만들고 남은 밀가루로 뭘 만들지 고민하다 '칼국수'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결과는 보시다시피...


그래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조금씩 실력이 오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호박전과 계란말이는 '진짜 집 밥 같다'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예전에 일본에서 계란말이 만들기 체험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이상하게 삼각김밥 모양이 되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개인적으로는 장족의 발전이라고 자부한다^^


본격적으로 식사 당번이 되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생각보다 필요한 장비와 재료가 많다. 훌륭한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지만, 훌륭한 요리사가 아닌 나는 연장이 많이 필요했다. 잘 쓰지 않는 조리기구나 소스도 막상 없으면 아쉬운 순간이 많았다.  


그리고 왜 어릴 때 어머니께서 카레나 곰국을 한 번에 그렇게 많이 끓이셨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만드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니, 한 번에 만들어 여러 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역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야 비로소 100%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생각보다 요리사의 선호가 식단 선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나는 국물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요리하는 것은 더 부담스럽다. 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나트륨을 많이 먹는다는 생각도 있다. 그래서 저녁 식단에 국물 요리는 거의 없었다. 조금 더 자신감이 붙으면 도전해봐야겠다.



글을 쓰다 보니, 똑같은 집안일인데 요리를 다른 일보다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다른 일들이 어질러진 집을 깨끗하게 '복구'시키는 일이라면, 요리는 무언가를 '창작'하는 일이라는 차이가 있다. 가진 재료로 무얼 만들지 고민하는 과정은 즐거운 스트레스 준다. 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직 어디 가서 요리를 한다고 자랑스럽게 실력을 뽐내기는 부끄럽다. 인스타나 유튜브의 화려한 요리들은 연출이 있는 걸 감안해도 범접하기 어려워 보신다. 그렇지만 꼭 남들에게 보여줄 정도로 잘할 필요까진 없으니까. 가족이, 친구가 먹고 행복해하는 수준이라면 그걸로 족하다.

저녁 시간이 다가온다. 오늘은 뭘 해 먹을지 냉장고를 다시 열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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