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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당한 코리안 Feb 08. 2022

나도 저 홈리스랑 손잡고 울고 싶었다.

"으허어엉...."


'으응? 뭐지?'


"으허어엉..."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봤다. 한 여자가 의자에 앉아 울고 있었다. 


주변도 의식하지 않고 저렇게 울다니...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회색머리를 풀어헤친 한 마른 여자가 의자에 앉아서 손을 얼굴에 대고 "으허엉.... 으허엉..." 하며 울고 있다. 주변의 사람들이 애써 외면한다. 자꾸 눈길이 거기로 가는 것을 참으며 나머지 책들을 반납구멍에 넣었다. 책을 코스트코 쇼핑가방 가득 가져온 덕에 책을 반납하는 것만도 족히 일분은 걸린다. 그 내내 여자는 계속 소리를 높여 운다. 


으허엉.... 


이 울음소리를 들은 곳은 미국의 시골동네의 자그마한 공립도서관이다.  몇 주 전에 왕창 빌려온 아이들 책을 반납하는데 이 울음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보는 나와는 달리, 반납데스크의 직원은 상관하지 않고 컴퓨터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다. 그 여자 옆으로 한자리 건너 앉은 중년남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문을 계속 읽고 있다. 나만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니까 그 여자가 신경 쓰지 말라는 제스처로 손을 휘두른다. 


다시 뒤돌아 책반납을 계속한다. 저 여자를 위로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옆에 가서 같이 울고 싶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속 깊은 곳에서 울음이 차고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지난 이 주간 울음을 참아왔다. 인생이 망한 것 같았고 어디로 도망치고만 싶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만 있다면 붙잡고 울고 싶었다. 


불면증이란 건 내 사전에 없이 살았던 내가 제발 잠을 푹 잘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모습. 

내가 그냥 침대에서 자고만 싶은 날들. 

그냥 도망가고만 싶은 날들. 


내 인생에서 가장 낮은 지점. 


이렇게 삶이 괴롭다고 느껴진 적이 없었다.  


너무 피곤해 쓰러져 자다가도 세 네시간 후 잠에서 깨고는 아침이 될때까지 각종 생각과 불안과 부정적인 생각들로 잠들 수 없는 나날들이 계속 되고 있었다.  


그동안 꾹꾹 눌러놓았던 울음들이 치고 올라온다. 저 여자의 으허엉 울음소리가 내 안의 울음과 공명함을 느낀다.  이름도 모르는 저 여자와 연결된 느낌이다. 가서 말을 걸어야지. 같이 손을 잡고 울어줘야지. 


반납을 마치고 다시 그 여자 쪽으로 뒤돌아서서  걸어가는데, 그 여자가 내 움직임을 알아차리고서는 황급히 손사래를 친다. 


"Are you okay?"


더 급격한 손사래. 그리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렇게까지 하는데, 더 다가설 용기는 내게 없음을 느낀다. 어쩔 수 없이 뒤돌아서서 우리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어린이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민망한 느낌을 둘째 치고라도 아이들 책을 빌리는 내내 마음이 씁쓸하다. 내 안에 공명되어 치고 나오려고 했던 울음도 다시 흩어져버리고 다시 멍한 상태로 돌아갔다. 


약 30분 후 아이들과 도서관을 나오는데 도서관 건물 입구 근처 벤치에 그 여자가 앉아있다.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까의 첫 인상이 확실해진다. 홈리스 homeless 였던 것이다. 


갑자기 말을 건다. "Do you have the time? 몇시인줄 아나요?" 


황급히 핸드폰을 찾았다. 반가운 마음도 있고.. 뭔가 도와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It's four o'clock  4시에요."


"Thank you." 


"Bye. Have a nice day."


그렇게 하고 그 홈리스 여자로부터 멀어졌다. 


이름도 모르는 여자,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을 사람이다. 내가 일년 동안 잠시 미국에 살러 온 것이 아니었으면, 책을 반납하러 잠깐 이 시간에 도서관에 들르지만 않았다면 만날일이 없었을 여자이다. 완전 다른 삶을 영위하는 두 인생.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없다.  인종, 국적, 나이, 사회경제적 위치...


그런데 그 여자의 울음으로부터 내 안의 깊숙한 뭔가가 건드려졌다는 것.


한 달 전만 해도 난 그 여자의 울음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인생이 힘든가보다... 힘들겠지... 불쌍하다 라는 정도의 얕은 연민만 느꼈을 것이다. 

 

근데 지난 한달 동안 참 인생이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패배감에 진저리 치는 시간을 지나면서, 이 세상에 참 고통이 많구나를 절감한다. 내 자신이 고통을 받으면서 함께 고통받는 다른 이들에게 더 반응이 되는 것이다. 더 큰 세상과 더 많은 사람과 공유되는 감정이 많아진다. 


아주 잠깐의 인터렉션이지만 여운이 남는다. 


힘든 기간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내가 어떻게 이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나중에 또 인생의 계곡을 지날 때 들춰볼 수 있는, 그리고 혹시라도 힘든 시간을 보내는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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