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3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남편이 30년 넘게 다니던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하였고, 우리가 결혼한 지도 30년이 되었다.
그사이 큰 아이가 30살이 되었으며, 취미랍시고 유일하게 사 모으던 커피잔이 30개가 되었다.
남편의 정년퇴직은 나에게 참 많은 심적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바라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 새장에 갇혀버렸다.
예전엔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회사로, 학교로 나가고 나면 깨끗하게 집을 치우고 차도 한 잔 하고 점심 한 끼 먹기 싫으면 건너뛰기도 하고 글도 쓰고, 음악도 듣고, 친구도 만났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시간들이 없어지고 있었다. 남편이 나를 귀찮게 하거나 매끼 밥 달라고 재촉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 매끼 챙겨줘야 마음이 편하고 한 달에 한번 있는 친구들 모임에 나가려면 전날부터 남편의 점심을 무얼 준비하고 나가야 할까... 하는 고민에 심란했다. 그러다 보니 만사 귀찮아졌다. 글을 쓰는 일도 이렇게 마음이 붕 떠있는 상태에서 집중해서 쓸 수도 없고 그렇게 안 쓰다 보니 주기적으로 ' 작가님! 글을 쉬지 말고 쓰세요'라는 브런치의 메일에 슬슬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였다.
아..... 난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분명 가족들을 위해 무언가를 종일하고 있지만
가슴은 늘 답답해 숨이 막히는 듯했다.
어느 날.
욕실청소를 하다가 화산이 폭발하고 말았다.
치워도 불과 몇 시간 후엔 다시 도루묵이 돼버리는 욕실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날 남편은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고,
큰 아이는 재택근무하는 날이고, 막내는 개강 전이라서 늦잠을 자고 있던 중이었다.
물 묻은 발로 거실로 뛰쳐나가서
" 너무 한 거 아니야? 공중화장실도 요즘은
이렇게 사용 안 하더라. 렌즈통은 왜 이리 많고
머리끈은 왜 여기저기 있는 거야. 춤추면서세수하는 거야? 거울에 얼룩 좀 봐라. 바닥에오일은 누가 떨어뜨린 거야? 미끄러워 머리깨질 뻔했잖아!"
그런데 놀라운 건......
아무도 나의 이야기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각자 하던 일 하면서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아서 그게 괘씸하여 더 큰 소리로 이야기하니 돌아오는 답은
" 아우.... 왜 이렇게 큰소리로 했던 말을 자꾸
반복하는 거야~ 알았어 알았다고"
대답이 없으니 내 목소리는 자꾸 커지고
식구들은 그게 시끄럽다는 거다.
뚜껑이 열린다는 게 이런 거겠지?
식구들은 힘들면 그냥 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몇 번 파업도 해보았으나 내가 깨달은 진리는 < 살림은 해도 티가 안 나고, 안 하면
내 눈에만 티로 보인다>이다.
내가 하지 않아도 식구들은 불편해하지 않고
나만 지저분함을 못 견뎌 안달복달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슬펐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듯 했다.
그날 나는 결심했다.
어디든 집밖으로 떠나 객관적으로 나를 좀
들여다보면 좋겠다고.
그리고 다른 30에 의미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올해 봄이었다.
그래! 30개 도시를 걸어보는 거야!
늘 몸과 마음이 움직여야 살아 있는 거다 라는 강박관념과 고집에 나는 늘 피곤하고 지쳐 있었다.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 같아서 떠나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찌감치 비행기티켓을 끊고 숙소와 렌터카를 예약해 두었다.
지난날의 여행은 늘 촘촘히 시간을 나누어
어느 곳에 가고 어디서 식사를 할 것인지 필요하면 식당예약까지 그야말로 빈틈없이 계획하느라 떠나기 전에 이미 지쳤었다.
이번엔 달랐다.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휙 떠나보는 여행이었다. 어느 곳에 갈지 찾아보지도 않았고 특히 어느 식당에서 무얼 먹을지는 알아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박물관과 미술관은 가보지 않기로 했다. 너무 좋아하는 곳이긴 하지만 미리 입장권을 예약해야 하고 차근차근 보자면 많은 시간이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점찍듯이 잠시 둘러보는 건 싫었다. 이번에는 동네산책하듯 낯선 곳을 산책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가볍게 떠나보기로 했다.
그렇게 달력의 날짜를 하나씩 그어가며
그날만을 기다리는데 떠나기 두어 달 전에
항공사로부터 심각한 메일 한통을 받는다.
" 귀하의 항공권이 취소되었으니 우리가 다시잡아주는 스케줄대로 떠나려면 ok 하고 싫으면환불해 줄게"
당황하고 놀랐지만 침착하게 답장을 썼다.
" 뭐라고? 갑자기? 그래도 우린 떠나야 하니까너네가 다시 정해준 시간에 떠날게. 그런데실망스럽네."라고.
그런데 이후에 이렇게 항공사 마음대로 스케줄을 변경하겠다는 메일이 몇 번 더 오더니
급기야는 출발 5시간 전에 화려한 메일 하나를 또 받았다. 그동안 세 번씩이나 맘대로 변경해 놓고 또다시 취소됐으니 하루뒤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탈건지 말건지 확답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예약한 항공사는 유럽 대형항공사였다.
하루 늦게 도착하면 미리 예약한 숙소와 렌터카 비용을 고스란히 하루치를 버려야 했다.
그럴 수는 없다는 메일을 보내놓고 우리는 급하게 항공권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아시아나 항공으로 다시 끊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출발 5시간 전이다 보니 남은 좌석 아무 곳이나 앉아야 했고, 금액은 1000만 원
이었다. 일단 다녀와서 L 사에 항의를 해볼 요량으로 그렇게 거금을 들여 우리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이산가족이 되어 뚝뚝 떨어져 앉았는데
양쪽 내 옆의 남자 승객들은 가는 내내 코 골고
재채기하고 화장실 한번 가려면 그 남자들이 일어나길 기다렸다 후다닥 다녀오고
많은 돈을 지불하고도 너무 힘들고 불편하게
12시간을 하늘 위에서 한탄해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30개 도시중 첫 도시인 프랑크푸르트에 발을 내딛고 감격스러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