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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부르   산책

알자스의 꽃


스트라스부르는 알퐁스도테의 소설 <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되었던 도시이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독일과 프랑스는 쟁탈전을 벌이다가 세계 1차 대전 후에 주민투표로 프랑스령이 되었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주민투표로 정했다는 게 좀 의아하고 재미있다.


스트라스부르는 독일과 프랑스의 경계에 있는 도시라서 두 나라의 문화가 묘하게 섞여있었다. 구도심을 보면 건축물은 독일전통가옥이 보이고, 언어는 프랑스어, 독일어, 알자스방언을 사용한다.

'크리스마스의 수도'라고 불려서 겨울에 관광객이 더 많다고 하는데 9월에 이미 크리스마스 용품과  쿠키, 슈톨렌까지 벌써 상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스트라스부르는 시내중심을 강이 둘러싸고 있어

섬이 떠 있는 모양이라서 이 섬을 '그랑드 일'이라고 부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예쁜 마을>이라는 지도가 있다.

그 선정기준은 인구가 2천 명 이하이고, 최소한 두 개의 문화재, 유적지 그리고 마을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선정이 되면 예쁜 마을이라는 간판이 걸린다고 한다.

그 예쁜 마을 중 하나가 프랑스 북동부인 알자스지방이고 알자스지방의 대표적 도시가 스트라스부르이다.

몇 해 전에 파리여행으로 도시의 화려함은 충분히 만끽했었고  점점 옛것에 대한 궁금함이 생기는 중이라 옛 모습의 프랑스가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당연히 스트라스부르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기차를 이용할 경우엔 스트라스부르역, 구텐베르크광장, 스트라스부르 노트르담 대성당, 쁘띠프랑스 순으로 보통 걷게 되는데

우리는  자동차 주차 때문에 쁘띠프랑스부터 출발해서 걸었다.


여행출발 전에 숙소를 정할 때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주차가 가능하고 욕실이 깨끗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4성급 호텔이어도 주차비는 별도로 엄청난 요금을 내야 하고 주차장도 이용하기에 너무 불편한 구조였다. 그리고 건물자체가 모두 오래되어서 아무리 비싼 호텔도 '좋다'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으므로 몇 성급인지보다는 깨끗하고 무료주차가 가능한 곳인지를 매우 고심하며 찾아보았다. 물론 남편이!

덕분에 3성급 정도 되고 욕실이 깨끗하고 무료주차되는 호텔을 만족스러운 금액으로 미리 예약을 했다.

렌터카를 이용하면 이동이 편한 반면에 이렇게 주차가능한 숙소를 찾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또 주의할 것은 호텔주차장인데도 지하가 아닌 외부에 주차장이 있는 곳엔 도난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유리창을 고  훔쳐가는 일도 왕왕 생긴다. 그래서 열쇠가 있는 지하주차장이 안전했다.  짐을 차 안에는 절대 두지 말아야 한다.



빅톨위고가 극찬한 700년 동안 지었다는 스트라스부르 노트르담 대성당은 붉은 사암으로 지어져서 햇빛과  하늘빛에 따라 시시각각 색이 변한다고 하여 기대가 컸는데 흐린 날씨에 이슬비까지 내려서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지 못하여 못내 아쉬웠다. 대신 사암이 어떤 것인가 손바닥으로 만지며 느껴보았다.

매일 오후 12시 반에 천문시계가 종이 울린다.

이때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 같았다.



어느 지점에서 출발을 하든지 작은 골목들을 따라 걷다 보면 나무로 만들어진 전통가옥인 colombages 가 보이면서 클레베르 광장에 이르고 커다란 회전목마가 돌아가고 있다. 클레베르 광장은 프랑스혁명군 시절에 나폴레옹과 함께 이집트원정 사단장이었던 장 밥티스트 클레베르의 이름에서 유래해서 클레베르 동상도 있다.

회전목마는 아이들만 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연세가 지긋한 백발의 어르신들도 목마를 타고 있었다.

빙그르르 도는 회전목마를 보니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다섯 살 때이던가 창경원에 가서 아빠품에 안겨서 회전목마를 처음 탔었다. 목마가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빙그르르 돌면 아버지는

나를 품에 꽉 껴안으셨다.

릴 적 사진을 찾아보았다. 흑백사진 속의 아버지는 너무나도 젊고 신성일을 닮아 있고 나는 깊어진 보조개를 하며 동그랗게 웃고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아렸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클레베르 광장에서 그랑드 아르캬드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한 남자가 두루마리를 펼치고 있는 동상이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서양 최초 금속활자를 발명한 구텐베르크이다.

' 빛이 있었다'라는 활자가 찍힌 종이가 보인다.

세계사 시간에 달달 외웠던 구텐베르크인데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활자를 통한 대량 인쇄기술은 성서를 일반인에게도 대량으로 보급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니 엄청난 혁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기억될 것을 그때는 왜 어떤 공식처럼 구텐베르크라는 이름 외우기에 급급했는지 모르겠다.



어슬렁어슬 걷다 보면 다양한 색상의 목재로 만들어진 집들이 보인다. <쁘띠프랑스>이다.

알록달록한 집들을 보면 자꾸 크리스마스가 연상이 되었다.  이곳엔 오래된 가옥의 식당들이 많은데 음식냄새가 솔솔 느껴져서 배고픔이 느껴진다. 그러나 분위기에 취해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면 낚인다. 비싸고 맛은 그다지.... 그러나 한 번쯤은 경험해도 나쁘진 않지만 베네치아 여행 때  이와 비슷한 분위기에 취해서 스르륵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엄청난 실망을 한 적이 있어서 트라우마 때문인지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또다시 걷다 보면 폰츠 쿠베르츠의 바라지바우반 (Barrage vauban ) 다리가 있다.

17세기에 방어 목적으로 지은 댐인데 이 댐에 저장된 물은 스트라스부르 남쪽 마을 전체를 침수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일레강에 세워진 방어공사를 구성하는 3개의 다리와 4개의 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다리들은 나무지붕으로 덮여 전쟁 때 방어자를 보호했는데

후에 지붕이 제거되었어도 폰츠쿠베르츠 (덮힌다리)라고 불리고 있다. 석양이 지는

파노라마 테라스에서 바라지 바우반을 바라보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에는 전쟁에서 방어하느라  치열하고 긴장된 장소였을 곳을 보며

지금은 아름답다고 감탄을 하고 있으니 참...

의외로 인적이 드물어서 꽤 오랜 시간 머물며

어둑해질 때까지 말없이 바라보았다.


15000보를 훌쩍 넘겼지만 힘들지 않게 가볍게 걸었던 것은 이 날을 위해 열심히 운동을 했던 덕분이다.  그래 잘했다 칭찬으로 내가 나를 안아주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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