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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산책

돈가스를 이긴 슈니첼


독일여행을 계획할 때 몇 가지 루트가 있다.

베를린과 포츠담, 괴테 가도, 프랑크푸르트와 주변, 로맨틱 가도, 헨과 알펜 가도, 판타지가도, 고성 가도, 메르헨 가도, 함부르크와 북부 등이다.

하이델베르크는 고성 가도의 도시중 하나이며

독일 남부 라인강의 지류인 네카르 강변에 있는

대학도시이다.



비교적 공영주차장이 깨끗했고 화장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유럽은 레스토랑 외에는 어느 곳을 가던지 화장실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1~2유로 정도이다.  대부분 현금으로 지불해야 하는데 요즘 여행객들은 현금보다 트래블월렛이나 신용카드를 많이 이용하므로 화장실을 찾았다 하더라도 현금이 없어서 이용할 수가 없었다. 렌터카를 이용한다면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화장실 이용후 영수증을 휴게소 편의점에 보여주면 1유로만큼 물건을 살 수가 있다. 우리는 주로 커피를 마셨다.  또 공영주차장이나 박물관도 무료화장실이 가끔 있긴 하다.  하이델베르크 공영주차장도 그러했다.  화장실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다니다 보면 가장 중요했던 게 화장실이기도 했었다.


대부분의 도시가 그러하듯 이곳 역시 비스마르크트 광장에서 산책은 시작되었다.

비스마르크트 광장은 중세시대 때 이교자들을 공개재판하고 화형 했던 슬픈 장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장소에서 많은 사람이 먹고 마시고 흥겨운 음악을 듣는다.

길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도 많았다. 전혀 모르는 사이지만 함께 음악을 듣다 보면 언어가 달라도 서로 바라보며 각자의 언어로 행복하 말하고 있다. 그걸 느낄 수 있는 게 정말 신기했다.


비스 마르크트 광장에는 성령교회가 있다.

성령교회는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하이델베르크의 대표적인 교회이다. 1398년 선제후 루프레히트 3세에 의해 12년 만에  완성된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교회이다.  고딕양식과 바로크양식이 섞여있는데 내부는 화려하지 않고 단조로운 후기 고딕양식의 건축물이었다. 이 교회는 비블리오테카 팔라티나라고 하는 궁정도서관으로도 유명하다. 대단히 많은 양의 진귀한 책들이 있었는데 30년 전쟁 때 바이에른에 패하면서 책을 모두 빼앗겼다고 한다. 그 후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교회의 뒷부분 1층엔 레스토랑과 상가가 있었던 게 이색적이었다.


도착할 때 흐렸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간 얼굴을 드러냈다. 촘촘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도착한 곳은 카를테오도로 다리이다.

이 다리는 구시가지에서 철학자의 길로 갈 때 건너는 다리이고 알 테 브뤼케 ( 오래된 다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다리 위에는 누군가 걸어두고 간 자물쇠들이 곳곳에 보인다. 연인들은 이 자물쇠를 잠그고 열쇠를 아직 가지고 있을까? 자물쇠 잠그기의 원조는 남산이 아닐까? 하는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건너면 철학자의 길이 나온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나무와 꽃이 무성한 산책로이다. 헤겔과 하이데거는 이 길을 걸으면서 사색과 명상에 잠겼을 테고 괴테는 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느 누가 됐든 이 길에 접어들면 깊은 생각에 빠져들 것이다.



카를테오도르 다리 위에 서면 독일 대표 유적지 중 하나인 하이델베르크 성이 보인다.

하이델베르크 성을 이야기하자면 30년 전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30년 전쟁은 1618년~1648년까지 신성로마제국을 비롯하여 중부유럽에서 30년 동안 벌인 전쟁이다. 서유럽 세계에 근대의 문을 연 종교전쟁이었고 유럽최초의 국제전쟁이었다. 이때 하이델베르크 성은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양쪽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고 후에 이어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또다시 성은 페허가 되었다. 다시 복원작업을 했지만  1764년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계속되는 전쟁에서 식수가 부족할 것을 대비하여 커다란 술통을 만들어 보관했는데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큰 술통인 그로세스 파스( Grosses Fass)이다.

이런 비운의 하이델베르크 성을 보고 빅톨위고는 " 이 성은 유럽을 뒤흔드는 모든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고, 지금은 그 무게로 무너져 내렸다"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동화 속 궁전처럼 보이는 이 성이 그런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숙연해졌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부지런을 떨며 이곳에 왔던지라 오후가 되니 나른해지고 피로감이 느껴질 때 린트초콜릿 매장이 나타났다. costco에 가면 언제나 수북이 쌓여있는 린트 초콜릿이라서 그냥 지나치려는데

딸들이 눈을 반짝이며 들어가는 바람에 투덜대며 뒤따라 들어갔는데...... 내가 더 흥분이 되어 넓은 매장을 둘러보느라 정신을 못 차렸다.  몇 가지를 골라 카운터로 갔는데 아르바이트생이 한국말을 한다. 너무 반가워서 유학 온 거냐고 물으니 아니랜다.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지금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다고 했다. 어머니가 한국인이어서 어릴 때부터 한국어와 독일어를 함께 구사했다고 한다. 매장에서 리미티드 에디션을 골라주기도 했다. 배가 고프다고 하니 이 고마운 아가씨가 맛있는 식당을 알려 주었다.


린트 초콜릿 매장의 친절한 아가씨가 알려준 식당인 슈니첼반크에 도착했다. 외부는 현대식이고 제법 아기자기했는데  어둡고 좁은 통로를 지나 내부로 들어서니 작고 낡은 나무테이블 몇 개가 있고 손님들은 오밀조밀 모여서 마치 선술집처럼 맥주와 슈니첼을 먹고 있었다. 우리도 당연히 슈니첼을 주문하였다.

목소리 크고 재미있는 직원이 커다란 접시를 양쪽에 두 개씩  서커스 하듯 들고 와서는 노래하듯 맛있게 먹으라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사라졌다. 이 또한 재미있는 퍼포먼스였다.  슈니첼이란 이름의 유래답게 돼지고기를 망치로 아주 얇고 넓게 두드려 펴서 밀가루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튀긴 것이다. 대부분의 슈니첼은 돈가스와는 달리 소스 없이 레몬즙만 살짝 뿌려 먹어서 퍽퍽하다고 들었는데 이 식당은 소스를 얹어 주었다. 양송이와 크림이 어우러진 소스와 독일식 양배추절임 그리고 감자구이가 나왔는데

너무 맛있었다.  빵가루 입혀 바삭하게 튀긴 돈가스와는 달리 튀김과 부침의 중간형태쯤 되는데.... 참 맛있었다.  그냥 돈가스맛과 비슷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슈니첼이 돈가스를

이기는 순간이었다.

항상 줄을 서야 하는 곳이라는데 점심시간을 조금 피해서 갔더니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슈니첼을 먹고 나니 배불러서 굴러다닐 지경이었으나 조금 더 걸어보고 싶은 마음에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데 노란색과 오렌지색의 예쁜 건물이 등장했다.

팔츠 선제후박물관이었다.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써  하이델베르크 주변에서 발굴된 고대 유물과 중세 때부터 낭만파시대에 걸친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미 문을 닫은 상태라서 내부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하이델베르크에 8번이나 방문해 빌레머부인과 사랑에 빠졌고, 법학도였던 슈만은 이곳에서 음악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곳이다. 그만큼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긴 전쟁으로 곳곳에 파괴된 흔적을 지닌 마음 아픈 곳이기도 하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콜마르로 가던 중 하루를 꼬박 둘러보았던 곳이다. 가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에 큰 실수 하나를 남길 뻔했다.



괴테의 명언 하나가 떠오른다.

" 사람이 여행하는 것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이 여행이 아닐까.

계획을 하지 않고 여행을 하든 계획과 목표가 정해진 여행을 하든 우린 서로 비판할 일이 못된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여행 중이고

내가 가고 있는 목적지와 다르다고 해서 ' 당신의 여행은 잘못되었다'라고 말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서로의 여행이야기를 들어주고 격려해 주고 그러면 되는 것이다.

여행의 끝에는 또 다른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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