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마르는 프랑스 동부 알자스지방 와인가도의 출발점이다. 신성로마제국의 자유도시, 종교개혁의 현장, 와인과 직물교역이 활발했던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 대부분의 도시가 그러하듯 구시가지에 볼만한 것들이 모여있어서 걸어 다니기에 힘들지 않았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콜마르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이 소요됐다. 맑았던 하늘이 서서히 흐려지더니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예약해 둔 숙소는 주택이었다. 작은 꽃마당이 있고 예쁜 울타리가 둘러진 집이었다.
집주인이 열쇠를 어딘가에 보관해 두었는데 찾느라 애먹었다. 그사이 비는 더 내리고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예약당시 주인과 소통할 때는 주차장이 있다고 했는데 막상 도착하니까 길가에 대충 세우는 형식이었다. 주인의 말이 처음과 달라서 기분이 안 좋았다. 이건 서막에 불과했다.
간신히 열쇠를 찾아서 1층으로 진입하고 보니
엘리베이터가 없다. 이 사실을 남편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황당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길가에 세워둔 차에서 짐을 빼서 건물 1층까지 비를 맞으면서 옮기고나니 이미 힘이 다 빠졌는데 주인이 배정해 준 우리 방은 무려 4층이었다. 회전하며 올라가야 해서 한층 올라가는데 계단은 20개씩이었다. 대리석계단이어서 빗물에 어찌나 미끄러운지 마지막 가방을 옮기다가 결국 계단 5개를 사이에 두고 미끄러져서 다리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4층까지 겨우 옮기고 열쇠를 꽂았는데 이번엔 문이 안 열린다. 열쇠가 낡았는지 계속 헛돌았는데 10번쯤 시도하고 겨우 찰칵 열렸다.
문이 열리고 우르르 들어갔는데집이 너무너무 넓고 예쁜 거다. 침실도 주방도 거실도 일단 눈에 보이는 거는 정말 예뻤다.( 이때는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배가 고파서 일단 까르푸 시티에 가서 장을 보았다. 우리의 로망을 실현하고자 고기와 채소 등을 샀다. 그렇다. 현지에서 장을 보고 그곳의 식재료로 근사하게 한 상 차려먹어 보는 게 로망이었다. 그런데 고기가 너무너무 질겼다. 분명 번역기 돌려서 안심이란 걸 확인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도저히 씹을 수가 없었다. ( 신기했던 것은 마트에 판매되는 모든 육류는 지방이 전혀 없었다. )
결국은 한국에서 챙겨 간 신라면과 요구르트로 배를 채우고 잠이 들었다. 너무 고단해서 대충 씻으려는데.....
이번엔 온수가 안 나왔다. 샤워를 할 수가 없었다. 집주인에게 연락을 하니 그럴 리가 없단다. 휴지도 없어서 또 연락하니 이번엔 카톡도 읽지를 않고 와보지도 않아서 다시 마트에 가서 두루마리 휴지 한 묶음을 샀는데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가장 저렴한 것이 내 주먹만 한 휴지 4개가 5유로였다. 그야말로 화장지가 금값이었다.
그날 밤은 모든 게 엉망이었고 식구들은 한숨 속에 쓰러져 잠을 청했다.
한 시간 정도 잤을까? 너무 추워서 일어나니 집안이 냉장고 같았다. 손발이 시리고 코가 빨개져서 우리는 옷을 덕지덕지 껴입고 양말까지 신고 주인에게 연락하니 프랑스는 법적으로 26도를 유지해야 해서 아무 때나 난방을 틀 수가 없단다. ( 아직도 이 말이 진실인지 확인을 못했다.) 기온은 이미 14도였는데 주인의 대답은 진짜 기가 막혔다.
우리는 모여 앉아서 날이 밝기만 기다렸다.
새벽 6시 30분 알람소리와 함께 우리는 그 집을 도망치듯 나왔다. 전날 올라갔던 80개의 계단을 내려오니바깥이 더 따뜻했다.
콜마르에 올 때 가장 궁금했던 곳이 메종 피스테르였다. 나는 미래소년 코난, 빨강머리 앤을 보고 자랐는데 그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사실은 나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고 또 보고 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콜마르에 여행을 왔다가 이 예쁜 분위기에 푹 빠져서 결국 <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지가 되었다.
콜마르는 포도주를 생산하여 판매하는 등 무역도시로 크게 번영하였는데 그당시 부자였던 모자제조업자에 의해 상인들의 거리인
Rue des Marchands에 메종 피스테르가 건축되었다고 한다. 건물 1층에 여러 개의 아치형 입구가 있고, 위쪽은 나무로 만든 테라스와 탑이 제법 화려하다. 2층 벽면은 성서의 우화와 독일황제들이 주로 그려진 채색벽화가 인상적이었다. 콜마르에 최초로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집이다.
메종 피스테리 덕분인지 콜마르의 골목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과 딱 마주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이 거리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가장 화려한 거리가 된다는데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장식품 상점들과 쿠키 가게들이 반짝이고 화려했다.
밤새 추위에 떨어서인지 아침에 몸살기운도 있고 몸이 굳었다. 어디든 가서 따뜻한 것을 먹어야 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쿠베르시장이다. 신선한 채소과 과일, 고기와 소시지가 있었다. 아침 장을 보러 나온 부지런한 주부들의 모습도 보였다. 화려하지 않지만 커피향기가 발목을 잡는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옆 베이커리에서 따끈하게 갓 구워진 크루아상을 사서 아침식사로 먹고 나니 몸이 좀 풀렸다. 빵을 몹시 좋아하는 나는 여행을 올 때 다짐한 것이 있었다. 매일 아침 갓 구운 빵을 먹을 것! 아직은 잘 지키고 있었다. 동네 작은 빵집이지만 아주 좋은 버터로 자부심을 가지고 새벽에 구워내는 빵들은 정말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커피와 빵을 먹고 나니
숙소주인에 대한 실망이 샤르륵 녹았다.
따끈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한결 걸음이 가벼워졌다. 쿠베르시장에서 조금 걸어 나오면 흡사 베니스를 연상하게 되는 동네가 등장한다. 이곳이 바로 <쁘띠 베니스>이다.
작은 로슈강이 흐르고 양쪽으로 콜롱바쥬라고 하는 알록달록한 나무집들이 보이는데 옛날에는 뱃사공들이 살았다고 한다.
콜롱바쥬란 나무골조가 드러나는 건축양식인데 기둥, 대들보, 버팀목등의 목재를 벽 외부에 노출시키고 그 사이를 흙, 벽돌 같은 것으로 메우는 것이다. 물가에 지어진 콜롱바쥬가 습해서 약할 것 같은데 깨끗하고 단단하게 유지되는 게 신기했다,
문득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와 산마르코 광장이 떠올랐다. 그 베네치아를 축소시켜서 옮겨놓은 듯해서 마치 만화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스트라스부르의 쁘띠프랑스보다는 볼거리가 적었지만 다양한 콜롱바쥬를 볼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한다.
어느 동네든 그 동네를 대표하는 큰 교회가 있다. 콜마르에는 생 마르탱 교회가 있다.
13세기 고딕양식의 영향을 받은 중세교회인데
이후에 계속 보수를 거듭하면서 르네상스 건축요소가 섞이게 되었다고 한다.
벽면 곳곳에 조각된 웅장한 이무깃돌이 기억에 남는다. ( 이무깃돌이란 금속이나 석재로 짐승모습을 만든 것이다)
천천히 교회를 한 바퀴 걸어보았다. 퇴색된 건물색, 오래된 의자들이 콜마르가 존재할 수 있었던 원천이 아닐까.
숙소 앞에 parc du champs de mars라는 공원이 있었다. 전날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나무의 초록빛이 더 깊어졌고 이곳 역시 회전목마가 돌아가고 있었다. 새벽 7시에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길을 물었는데 한국말을 조금 알고 있다고 했고 그 시간에 첼로 수업을 들으러 가는 중이라고 했다. 일반학교가 아닌 음악학교에 다닌다고 했는데 새벽부터 수업을 들어서 힘들지 않으냐고 물으니 " 아니요"라고 한다. 밤에 9시면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난다고 한다. 길에 다니면서 유심히 보았는데 손에 휴대폰을 쥐고 있는 사람이 안보였다. 휴대폰이 사람을 지배해 버린 세상에 살고 있는데 그들은 아니 그 나라 청소년들은 여전히 책을 읽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에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어서 몹시 놀랐다. 그렇게 사는 게 더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귀곡산장 같은 숙소에서의 하룻밤을 생각하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사랑했다던 콜마르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컸었다. 숙소 때문에 잠시 실망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 또한 산책이었다.
산책이란 것이 언제나 평온한 것은 아니다.
걷다 보면 뾰족한 장애물을 만나기도 하고 멀쩡히 걷다 돌부리에 걸려 발을 접질리기도 한다. 평화로운 듯 걷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조심조심 걷고 있다. 콜마르에서의 산책은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