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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로운 Sep 03. 2023

아이가 나를 키운다.

어버이날, 아이에게 받은 사랑이 벅차다.


5월이 되면서부터 큰 아이가 바빠졌다. (사실 늘 바쁜 아이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단다. 하루가 너무 짧단다. 깊이 공감한다.)

5월 8일이 어버이날임을 인지하고부터는 머릿속에서 커다란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1단계. (대본 밑 작업) 엄마를 부른다. 사인펜을 쥐어주고 도화지를 펼치더니 다짜고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잘 알아볼 수 있게 써주라고 한다. 크게 3 챕터. 엄마가 쓰는 내용은 '도토리가 말했어요. 물방울이 말했어요. 해님이 말했어요.' 이 정도? 등장인물마다의 특별한 표시를 했다. 이게 뭘까.


2단계. (공연 배경 만들기) 택배 상자 버리지 마세요! 언젠가는 가지고 놀 거라며 버리지 말고 두라던 커다란 상자를 꺼내 아빠에게 요래조래 잘라주라고 부탁한다. 놀며, 책 읽으면서도 동생과 함께 틈틈이 뭔가를 부지런히 그리고 색칠하고 자르느라 바쁘다.


3단계. (대본 세부작업 및 캐스팅) 도화지를 자르고 책 모양으로 접어 각 역할마다의 세부 대사를 적었다. 엄마는 해님으로 캐스팅되었는데 받아 든 연습 대본에는 '도토리를 처음 도와줄 때', '도토리를 축하할 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대사가 자세히 적혀있었다. 아빠는 물방울, 작은 아이는 주인공 도토리 역할이다. 그리고 아빠 엄마는 함께 숲 속의 동물들 역할까지 해야 한단다. 본인은 작가이자 감독이자 해설로도 참여한다.


4단계. (녹음) 아빠에게 이러저러 상황을 설명하더니 기술적 도움을 받았다. 패드에 이어폰을 연결해서 꽤 성능 좋은 음질로 녹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두 번 해 보더니 한 컷, 한 컷 녹음할 때마다 대본을 신중하게 연구하며 파일마다 번호와 제목을 붙여갔다. 주인공 도토리는 아직 60% 까막눈이라 한 번에 녹음할 수 있는 대사 분량이 짧은 것까지 고려하는 세심한 감독님이다. 녹음은 거의 일주일에 거쳐 배우들이 지치지 않게 진행되었고 잘했을 때는 아낌없는 칭찬도 받았다. 덕분에 현장의 분위기가 좋았다.


5단계. (연습) 녹음이 진행되는 사이 배경이 완성되었다. 등장인물들은 나무젓가락에 붙여졌고, 해님과 물방울은 각자의 위치에 맞게 실에 붙였다. 녹음된 파일 틀어보며 리허설을 해본다.


6단계. (공연) 드디어 어버이날이다. 식탁 옆으로 공연장을 세팅하고 관객석을 마련했다. 드디어 두둥-! 몇 날 며칠 동안 열심히 준비한 공연을 앞두고 관객인 내가 더 긴장이 되었다. 큰 아이는 나무젓가락 등장인물 움직이며 손연기를 펼치고, 작은 아이는 언니의 지시에 맞추어 녹음 파일을 제 때 누르는 음향 역할을 맡아 공연이 진행되었다.



 '도토리나무가 어떻게 자랄까요.'

 숲 속 마을, 다람쥐가 묻은 도토리가 여러 도움으로 커다란 도토리나무로 자라나 사랑과 축하를 듬뿍 받는 이야기이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소소한 실수도 있었지만(생각보다 소리가 작게 녹음된 몇몇 대사, 도넛 먹느라 타이밍을 놓친 음향 담당...), 그조차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감상 포인트였다.


 와! 짝짝짝!

 남편과 나의 물개 박수로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쑥스러움과 뿌듯함으로 피어나는 아이들의 웃음에 후련함도 함께 묻어난다. 이어서 안겨주는 어버이날 감사 편지와 그림이 한 무더기.


 벅차게 행복하다.

 아빠와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계획하고 준비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순간순간 이미 넘치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꼈다. 아직도 서툴고 부족하기만 한데, 이만큼의 감사를 받을만한 어버이인가...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고맙다, 얘들아. 너희로 인해 아빠와 엄마도 함께 자라고 있단다. 어떻게 너희를 사랑해야 하고, 또 받는 사랑에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정해진 '그런 날'에 맞추어 당연하게 주고받는 형식적인 감정이 되지 않도록, 너희들이 자라날수록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공연 후 무대 인사
등장인물마다의 대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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