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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25. 2020

월세 500만 원?! 농담이겠지

홍콩에서는 관도 세워서 묻는다며?


홍콩에 오자마자 들은 우스갯소리입니다. 그만큼 땅이 부족하니, 장례를 치를 때도 손바닥만 한 땅에 관을 세워서 묻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거죠. 실제로 홍콩에서는 매장 자리 부족 때문에 주로 화장을 많이 선택하는데, 납골당마저 공간이 부족해 한참이나 대기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땅은 좁은데 인구는 많은 홍콩의 공간 문제는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즘은 중국과 접한 신계 지역까지 많이 개발되어 예전만큼은 덜하다고 하지만, 홍콩섬 북단과 구룡반도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입니다. 어디 가나 눈 닿는 곳에 사람들이 복닥복닥하고, 출퇴근 시간에는 그 커다란 이층 버스 1, 2층이 만원 버스가 되곤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풀릴 기미 없는 주택난과 고공 행진하는 집세는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요. 

아시아 도시들의 월세 순위 (그래프: ECA International)

오죽하면 '부동산 헤게모니'라는 말까지 나왔을까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터무니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정부 측에서 부유층인 부동산 개발자에게 유리한 세금 제도와 토지 제도를 유지함으로써 빈부격차를 방관 또는 심화시켜 왔다고 하니 참 뿌리 깊은 문제입니다 [1]. 홍콩의 작가 천호께이가 쓴 소설 <망내인>에 보면 홍콩 서민들의 설움이 잘 드러납니다. 

홍콩은 땅덩이가 금이나 다를 바 없다. 땅은 좁은데 인구는 많아서 주택 문제는 홍콩 사람들의 삶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다. 정부에서 저소득층을 위해 임대료가 저렴한 공공주택을 공급하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신청자는 몇 년씩 기다려야 입주할 수 있었다. (...) 공공주택의 임대료는 민영주택의 절반 수준이었다. 어우후이 가족은 허리띠를 졸라맨다면 적으나마 미래를 위해 저축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 천호께이, <망내인> 중

여기 나오는 소박한 공공주택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꿈이라고 하는데요, 얼마 전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정부 아파트마저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관짝 집(coffin house)이나 닭장 집(cage house)에 사는 형편이라고 해요 [2]. 손바닥만 한 아파트를 쪽방으로 쪼개 사는 경우도 많은데,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월세를 60-70만 원이나 내야 한다니 정말 악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이 곳은 부의 대물림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회인 듯합니다. 까마득한 조상님이 구매하신 주택을 대대손손 물려받아가며 재산을 불려 가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값싼 정부 아파트도 들어가지 못해 허덕이는 사람들도 있는 거죠. 이 곳에 오래 사신 교민 분들도 입을 모아 말하십니다. "홍콩은 곧 죽어도 부동산이지." 



제가 사는 동네에는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평균보다는 제법 고급스러운 아파트들이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위치만 놓고 보면 홍콩 섬이기는 하지만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 서울로 따지면 강남이나 용산같이 최고로 좋은 입지라곤 할 수 없어요. (워낙 땅이 좁으니 지하철로 20분이면 시내 한복판에 도착할 수는 있지만요.) 고급이라지만 평수는 20평 이하가 대부분이고요. 런데 이런 집들이 월세는 얼마일까요?


20평 아파트가 500만 원이 넘습니다. (50만 원 아님 주의)


너무 초현실적인 가격이라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어요. 물론 많은 경우 살인적인 월세를 감안하여 연봉이 책정되거나, 아예 집세를 내주는 회사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외국인이나 주재원, 또는 현지에서도 잘 나가는 금융계 종사자들의 얘기지, 일반적인 서민들은 물려받을 집이 없는 이상 월급을 모아 집을 사는 건 하늘의 별 따기일 겁니다.


그렇지만 500만 원도 나름 합리적(?)인 가격이란 걸 깨달은 건, 같은 동네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였어요. 그 친구는 홍콩 집 치고는 정말 큰 30평대 후반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요, 방 3개에 헬퍼 룸, 화장실 2개와 넓은 거실이 갖춰진 좋은 집이었지요. 월세 얘기를 하다 보니 그 친구는 900만 원의 월세를 내고 있더군요. (그 집은 주재원이다 보니 회사에서 매달 충분한 생활비를 대 주기는 하지만, 대부분 월세로 지출하고 있었습니다.) 900만 원?! 매달??



그러고 보면 홍콩은 참 이원적인 사회입니다. 광둥어는 한 마디도 모른 채 우버를 타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영어로 진료라는 병원을 골라 가고, 팁 문화까지 닮은 미국식 다이너를 찾아가서 밥을 먹을 수 있고요. 다른 한 편으로는 영어는 한 마디도 안 쓰면서 재래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로컬 병원이나 한의원에 찾아가서 진료를 받고, 동네 차찬탱에 가서 싼 값에 한 끼를 해결할 수도 있거든요. (영자 신문에서는 "dirt cheap" (개 싸다..?)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홍콩에 흔한 차찬탱의 모습 (이미지: Food Republic)

저의 경우 아이를 외국인 학교에 보내다 보니 아는 학부모들도 모조리 외국인이라, 로컬 친구를 사귀고 싶어도 도통 기회가 없습니다. 아이의 학교 친구들은 엄청난 대저택에 루프탑 정원까지 딸린 곳에서 사는 아이들도 많아서, 이 곳이 진짜 홍콩이 맞나 싶기도 합니다. 귀하디 귀한 공간인데, 누군가에겐 너무나 풍족하게 주어지고 다른 이에겐 딱 닭장만큼만 허락되다니요.


요즘은 그래도 시위에 코로나까지, 상황이 많이 안 좋아지며 집세가 살짝 하향세입니다. (그래 봤자 450만 원) 하지만 이 정도 가지고는 정말 어려운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기엔 턱도 없는 수준이지요. 동서양이 만난 곳, 전 세계의 돈이 몰려 화려하고 반짝였던 이 곳이었기에 그림자는 더 짙은 듯합니다.


*표지 이미지: Trade Finance Global

[1]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266650#0DKW

[2]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950446?lfrom=kak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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