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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an 04. 2021

작심삼일이라도 괜찮아

살다 살다 이렇게 감흥 없는 새해는 처음입니다. 그렇다고 2020년이 가는 게 아쉬운 건 결코 아니지만. 

2020년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엉망진창인 한 해였습니다. 사람들에게만은 아닙니다. 연초부터 호주의 대규모 산불로 가엾은 코알라들이 검댕에 그을린 사진이 보도되었고, 그 후에도 시베리아와 캘리포니아에서도 산불이 연달아 일어나서 코로나로 팍팍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브레처럼 부숴 버렸죠. 


길고 지치는 한 해였던 만큼, 2021년 새해가 밝아 와도 심드렁한 것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지난주에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를 보니, 사람들이 이 와중에도 2021년에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이런저런 새해 다짐을 했더군요. 새해 다짐이란 본디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이 운명이지만(나만 그래..?), 그래도 한 번쯤 작년을 되돌아보고 올해를 내다보는 시간을 가지는 건 중요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2020년은 저에게도 의미심장한 한 해였습니다. 원래는 "해외특파원이 발견한 제3의 공간 매거진"에 홍콩 특파원으로 합류하려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는데, 이왕 글을 쓰게 된 것이니 이제까지 공부한 것에 대해서도 따로 하나 둘 써보고자 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니까요. 


기후변화와 에너지에 관심이 많다고 하면 꽤나 친환경적인 사람 같지만 사실 그건 전혀 아닙니다. (막 살아온 사람임) 예전 회사에서 일할 때 각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프로젝트를 하나 수행했는데, 그때 정부 정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기후변화나 환경 부문은 시장에 맡겨 놓으면 망하는 전형적인 사례로, 정책이 없으면 해결이 안 되는 부문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에너지와 기후변화 정책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하게 되었고요. 


하지만 매주 글을 쓰다 보니 기후변화 자체가 얼마나 많이 진행되었는지 아무래도 더 자세히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사실 기후변화 관련 기사를 보면서 "너무 뻔한 얘기를 반복한다"라고 내심 생각했는데 (북극의 얼음이 나날이 녹고 있다, 해수면이 올라가서 피해가 크다, 북극곰이 살 곳이 없다, 등등) 정말로 그런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걸 깨달았죠. 

이런 사진 자꾸 보여주는 게 이유가 있었어.. (이미지: Nasa Climate Change)

하지만 염세적으로 "이젠 망했다"는 결론을 내려는 건 아닙니다. 이미 티핑 포인트를 넘어섰다는 우울한 전망도 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지금 저는 아이가 막 초딩이 되었는데, 얘가 살 세계를 포기해 버리고 싶지는 않거든요. 



2021년에는 코로나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는 것처럼, 기후변화 대책 논의도 조금은 새로운 판도를 맞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년에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었던 UN 기후 협상도 글래스고에서 진행될 것이고, 미국도 정권이 바뀌었으니까요. 한국을 비롯하여 여러 대규모 배출국들이 2050 제로 배출량 달성을 내세우고 있으니,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하더라도 대책 없이 쭉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위에 쓴 뉴욕타임스 기사에는 일반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행동을 다루고 있어서 나름 도움이 되었어요. 국가 정책은 당장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물론 개인적, 사회적 맥락마다 적용이 안 될 수도 있지만 내용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요런 것들이 있겠구나, 하고 한 번쯤 읽어 보면 좋을 듯합니다.  


지역 사회 차원에서:

- 당국에 청원/요청하기 (입법자에게 기후변화 관련 법안을 제정하도록, 또는 교육 당국에 기후변화 교육을 커리큘럼에 포함시키도록)

- 관련 단체를 지원하기 (비영리단체도 점점 입김이 세지고 있지요) 

- 아는 사람들과 지식 공유 


여행의 방법을 바꾸기 (아니면 적게 다니기): 

- 비행 대신 선박을 이용하기 (이건 좀 힘들긴 합니다. 홍콩에서 한국에 배 타고 가려면 그게 며칠이야)

- 걷거나 자전거 이용


전력화 

- 건물에 전력만을 사용하도록 하는 캠페인 지원 (미국에선 요즘 전력화 정책을 내세우는 지역이 많더라고요)

- 전기차 구매 

- 가스스토브를 인덕션으로 바꾸기 (저희는 자가가 아니라서 어렵습니다만ㅠㅠ)


돈 쓸 때는 현명하게 

- 화석연료에 투자한 주식을 다른 곳에 분산 투자

-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 지원 (사서 쓰고 버리는 것에 반해 투입된 물질을 다시 활용하는 경제를 의미해요. 요즘 제로 폐기물 라이프스타일과 함께 핫한 토픽이죠)  

- 옷이나 물건을 살 때 중고 쇼핑, 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제품 구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 

- 고기 소비 줄이기 (붉은 육류 소비 줄이기, 주 2회 채식주의 식단) 

- 집에서 플라스틱 식기 사용 줄이기 

- 음식물 쓰레기 따로 처리 (이건 한국에서는 이미 하고 있죠)



그렇지만 이런 작은 노력들이 과연 뭔가 변화를 가져다줄까요? 개인의 노력은 고사하고 각국 정부의 노력이나 UN 차원의 대처도 아직 미미한데 말입니다. 하지만 결과가 약속되어야지만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행동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큰 의미를 가져다줄 수 있거든요. UN 기후협상도 그렇게 시작되었고요.

(1990년 리우에서 타결된) UN 기후협상은 대단한 성과였다. 그 목표 때문이 아니라 (어차피 2000년 배출량을 1990년 수준 이하로 낮추겠다는 약속은 그 누구도 지키지 못했다) 존재 자체가 성과였다. 4년 전만 해도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후변화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기후 협상 덕에 기후변화는 국제무대에서 인류와 지구에 닥친 긴급하고 근본적인 문제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 다니엘 예르긴, <The Quest> 중   

작심삼일이라도 그 삼일이 쌓이면 뭔가가 달라질 수 있겠지요. 아니, "작심" 자체로도 마음을 먹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지 모릅니다. 어쨌든 기후변화도 지금이 제일 나은 상황이니까요. 영국 극작가 피터 유스티노프는 "지금도 '좋았던 옛날'이 될 것이다. 10년 후에 돌아본다면."라고 했는데요,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정상적인 기후'가 될 것이다. 10년 후에 돌아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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