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와 일회용품, 안 쓸 수는 없을까
"또이음싸이."
광둥어라고는 숫자와 몇 마디 인사말밖에 모르는 제가 요즘 처음으로 써보는 말입니다. "비닐봉지는 됐어요."라는 뜻이에요. 이 곳 홍콩에 있는 마트에서는 장바구니를 가져가지 않으면 비닐봉지에 80원 정도의 요금을 따로 받기는 하지만, 냉장 식품이며 신선육, 냉동식품 패키지마다 하나하나 따로 속비닐을 싸 주곤 합니다. (물론 장바구니 속 다른 물건이 젖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거죠.) 처음에는 화장실 쓰레기며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데 적합해서 감사히 받았지만, 날이 갈수록 마음이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어요. 사실 홍콩만이 아니죠. 미국에 살 때도 장 한 번 볼 때마다 우수수 생기는 비닐봉지들을 보며 마음 한 구석이 늘 무거웠었어요.
팬데믹 시대의 악순환
코로나 시대가 되자 단순히 장 볼 때 비닐봉지만이 문제가 아니더군요. 전 다른 건 못해도 되도록 커피숍에서는 텀블러를 사용했었는데요, 커피숍 직원은 머그컵도, 제가 가져간 텀블러도 사용할 수 없고 오로지 일회용 잔에만 커피를 담아줄 수 있다고 했어요. 뿐만 아닙니다. 원래 빵집에서는 찬장의 유리 미닫이문을 열면 먹음직스러운 빵을 하나씩 쟁반에 담아서 계산하곤 했었는데, 코로나가 터지자마자 재빨리 빵을 하나하나 비닐봉지로 싸서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음식을 배달해 먹을 때 사용되는 일회용 용기도 문제고, 한 사람 한 사람 매일 갈아 쓰는 마스크까지(마스크도 플라스틱 쓰레기인 거, 아셨어요?).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얼마 전 중앙일보에서 "신데믹(Syndemic) 위기에 처한 인류"라며 아래와 같은 다이어그램을 소개했습니다 [1]. 코로나 사태가 기후변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저도 전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쓰레기나 미세 먼지와도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이 한눈에 보였어요. 기후변화로 인해 얼음이 녹고, 과거에 존재하다가 얼음 안에 갇혀 있던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질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요, 또 다른 팬데믹의 시대가 오면 그때는 또 어떤 뉴 노말이 자리 잡을 것이며, 또 얼마나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생산하게 될까요?
비닐과 일회용품, 현대 인류의 라이프 스타일
가장 큰 문제는 이미 굳어진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기가 너무나, 너무나 어렵다는 겁니다. 이미 '사고, 쓰고, 버리는' 것이 우리의 생활양식이 되어 버린 것이죠. (얼마나 편합니까?!)
벌써 작년 일인데요, 뉴욕 타임스 기자 한 명이 일주일 동안 플라스틱 봉지를 쓰지 않는 생활을 해보고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비닐이나 일회용 포장지를 쓰지 않기 위해 그분이 해야 한 것들을 나열해 보면:
과소비를 막기 위해 쇼핑 리스트 만들기
간식으로 봉지 과자 대신 바나나나 대량 포장된 견과류 먹기
슬라이스 치즈 대신 왁스 치즈 찾아서 먹기
종이에 빵을 싸주는 빵집을 멀리까지 찾아가기
결과적으로 일주일 동안 플라스틱 쓰레기를 절반으로 줄이기는 했다고 합니다만, 사실 이게 지속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선 일주일 동안만 실험한 것이기 때문에 치약이나 칫솔, 화장지, 선크림 등의 제품은 제외되었고요. 또, 이 분이 사시는 곳이 그나마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서, 재사용한 비닐로 포장을 하거나 천에 싸서 파는 제품이 많은 슈퍼가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대부분의 마트는 그렇지 않죠.
게다가 매번 빵을 살 때마다 멀리까지 찾아갈 수 있을까요? 바나나와 호두가 감자칩을 영원히 대신할 수 있을까요? 갑자기 새우깡이 너무 먹고 싶고, 비닐봉지에 담긴 그 새우깡이 아니면 도저히 안될 때는 어쩐다 말입니까.
즉 나의 생활 방식을 완전히,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이렇게 살아가기는 무척 어려운 것이란 얘기죠.
'재활용'과 '재생 가능'은 과연?
'그, 그래도 난 재활용은 열심히 한다고!'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저는 사실 얼마 전에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이 곳 홍콩에서는 재활용 관련 인력이나 인식이 무척이나 부족해서, 아파트 차원에서 재활용 수거함을 따로 마련해 놓고 있는 경우에도 사실 그냥 일반 쓰레기차가 와서 다 섞어서 수거(!)해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나마 플라스틱 통이나 유리병을 분류해서 버리는 것으로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고 있었는데,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그래서 여기서는 아파트 수거함에 버리지 않고 관련 NGO 사무실에 찾아가서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비닐봉지를 재활용하게끔 하기는 하지만, 그 비율은 놀라울 만큼 낮습니다. 200개에 한 개 꼴로 재활용된다고 하니까요. 한국은 그래도 음식물 쓰레기며 재활용 관련 규제가 엄격해서 다행이지만, 몇 년 전부터는 시민들이 재활용품을 잘 분류해서 버려도 재활용 수입 수요가 많이 줄면서 재활용 자체가 많이 어려워졌다는 문제가 대두되고 있죠.
최근에 생분해 가능한(biodegradable) 비닐봉지가 있다고 들어서 여기서도 구할 수 있나 싶어 검색을 좀 해 보았는데요, 구글 검색 결과에는 3년이 지나도 멀쩡하다는 연구와 각종 문제점에 대해 줄줄 나왔습니다 [2].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일부를 제외하고 많은 제품들이 문제가 있다고 해요.) 3년이면 바다에 흘러 들어가 미세 입자로 쪼개져서 바다 동물들의 코나 뱃속에 들어가고도 남을 시간인데요. 재활용이나 재생 가능 용품에도 한계가 분명 있다는 거죠.
결국은 덜 사고, 덜 써야
이 문제는 결국은 비닐봉지와 일회용품이 가지는 가치가 너무 낮다는 데서 비롯되는 겁니다.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데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무려 10퍼센트가 사용된다고 합니다. 수백만 년 동안 차곡차곡 만들어진 지구의 자원은 이렇게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의미 없는 물품을 만드는 데 낭비되는 셈이죠 [3]. 인류가 1년 동안 써 버리는 비닐봉지는 무려 5천 억 개에서 1조 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 전 세계 정부가 미친 척하고 "비닐봉지 벌금 제도"를 만들어서, 한 개 버릴 때마다 10만 원씩 내라고 하면 단박에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데요. (부자들도 있으니 100만 원으로 할까요?)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덜 사고, 덜 쓰는 겁니다. '사고, 쓰고, 버리는' 이 고리에서 앞 두 행동이 바뀌지 않으면 마지막 행위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죠.
다음은 플라스틱 줄이기 100 계명(?) 중 몇 가지만 추려 봤습니다. 다들 아는 것이겠지만 한 번쯤 다시 생각하며 실천해 보면 좋을 듯합니다.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자.
밖에서 목마를 때 페트병 생수 사 마시지 말고 집에서 나갈 때 물병 가져가자. (요거 약간 귀찮은데 효과 좋습니다.)
플라스틱 빨대 대신 스테인리스 빨대를 사용하자.
장 볼 때 과일이나 야채를 비닐봉지에 따로 담지 말자. (물품 구분하고 싶다면 천 바구니 가져가서 활용 가능)
빵집에서 종이에 싸 달라고 하자. (가능하면.. 저희 동네는 잘 찾아보면 종이에 담긴 빵이 구석에 숨겨져 있더라고요.)
되도록 대용량 물품을 사자.
액체 비누 대신 고체 비누를 사용하자.
물건 살 때 패키지를 잘 확인하자. (간혹 plastic-free라고 쓰여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비행할 때 주는 헤드폰 비닐 뜯지 말고 내 꺼 가지고 다니자. (다시 언제 비행기 탈지는 모르지만ㅠㅠ)
*표지 이미지 출처: Green Queen
[1] http://m.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8705089
[3] https://plastic.education/how-to-stop-the-use-of-plastic-bags/
[4] https://myplasticfreelife.com/plasticfreegu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