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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날 Dec 06. 2023

홈그라운드에서 달리기



나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매번 같은 코스를 달린다.


매번 같은 코스를 달리면 좋은 점은 뭘까. 바로 러닝 페이스를 수월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달리면서 시야에 잡히는 풍경이나 코스에 익숙해지면 구간마다 페이스를 조절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내가 매번 달리는 10km 코스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1km를 조금 넘게 달리면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동네 강변 산책로 입구가 보인다. 보수 공사를 한 지 오래 된 우리 동네 산책로는 군데군데 울퉁불퉁한 부분이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 산책 나온 개와 자전거도 조심해야 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산책로 위에서 부지런히 발을 굴린다.


3km를 지나면 초등학교가 나오면서 직선 코스가 시작된다. 길이 반듯하고 잘 닦여 있어서 달리기 좋은 구간이다. 이 구간부터는 호흡과 자세에 집중하면서 조금씩 페이스를 올린다. 컨디션이 좋으면 이쯤에서 러너스 하이가 오기도 한다.


* 러너스 하이는 달리기를 지속하면 느낄 수 있는, 호흡이 안정되고 기분이 고조되는 상태를 말한다.


5km를 달리면 동네에서 가장 큰 교회가 모습을 드러낸다. 교회 앞에서 반환점을 찍고 출발한 장소로 돌아갈 시간이다. 이 구간에서 옷이 땀으로 젖기 시작하고 허벅지 근육이 뻐근해지는데, 이제 반 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으로(긍정적인 마음!) 달리기에 집중한다.


7km를 달리면 아까 본 초등학교가 다시 나온다. 집중력을 잃으면 페이스가 무너지기 쉬운 구간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익숙한 풍경을 눈에 담으면서 호흡과 자세에 집중한다. 이 구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리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지면서 마치 명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9km를 달리면 동네 강변의 산책로 입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달리기를 끝낼 때가 왔다는 뜻이다. 근육이 지치고 호흡이 버거운 상태지만, 오 분만 더 달리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정신을 바로잡는다. 컨디션이 아주 괜찮은 날에는 이 구간에서 속도를 올려 스퍼트를 낼 때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스무 번 달리면 한 번 정도⋯?).


모르는 코스를 달리면 이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할 겨를이 없다. 울퉁불퉁한 길이 나오면 나오는 대로, 사람 많은 길이 나오면 나오는 대로 그때그때 페이스를 조절해야 한다.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코스에서 달리면 속도가 들쭉날쭉하고 몸이 지치기 쉽다. 내가 매번 같은 코스를 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달리기를 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운동선수들이 홈 어드밴티지를 괜히 중요하게 여기는 게 아니라는 사실.


관중들 입장에서는 경기장이 다 비슷비슷해 보이겠지만 축구장마다 잔디의 질이 다를 것이고 빙상경기장마다 빙질이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운동선수들은 홈그라운드에서 경기를 하면 변수를 최대한 줄이고 안정적인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코스를 달리면 돌발 상황이나 부상 등의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적인 러닝을 할 수 있다. 달리기의 좋은 점은 홈그라운드를 내가 직접 고를 수 있다는 점이다. 러너에게는 자신이 달리는 곳이 곧 홈그라운드가 되니 참 편하지 않은가.


코로나의 기세가 잠잠해지고 오프라인 마라톤 대회가 다시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아직 대회를 나갈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 마라톤 대회를 나가게 되면 오늘 내용을 잊지 말고 미리 대회 코스를 달리면서 나의 홈그라운드로 만들어봐야겠다.




이미지 출처: Bulldogs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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