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바람이 많이 불고 살짝 비도 섞여 내렸다. 오늘은 쇠소깍 가서 조각배 타고 놀고, 오후에 요트 타고 바다에 나가 주상절리대를 보고 낚시체험을 하고 돌아오는 일정인데 바람이 많이 불어 요트 승선이 취소되지는 않을까 라라도 나도 걱정을 했다.
그래서인지 아침을 먹고 일찍 쇠소깍으로 출발해야 하는 걸 깜빡 잊는 판에 허둥지둥 버스를 타고 쇠소깍으로 가는 동안 마음이 불안했다. 예약시간 안에 안 오면 예약이 취소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택시를 타고 출발했으면 좋았을 것을 버스를 고집하는 남편을 탓하고, 미련하게 택시를 부르지 못한 나를 탓했다. 어제도 파도 때문에 요트승선이 취소되어 오늘의 일정까지 변경이 된 것인데 이것도 틀어지면 라라와 베토가 실망할 것이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예약취소는 없었고 순진한 우리들만 애글 탕 속을 끓였었다. 아마도 휴가철이 아니라 여유가 있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쇠소깍은 서귀포시 하효동과 남원읍 하혜리 사이를 흐르는 효돈천 하구를 가리키며, 제주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하여 바닷물과 만나면서깊은 웅덩이가 생긴 곳이다. 쇠소깍의 이름은 제주도 방언인데 쇠는 효돈마을을 뜻하고, 소는 연못, 각은 접미사로서 끝을 의미한다.
쇠소깍은 초록색의 깊은 물을 사이에 두고 양쪽이 여러 가지 모양의 돌병풍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위로 숲이 우거져 신비한 계곡에 온 느낌이었다. 라라가 예약체크를 하고 구명조끼를 베토까지 모두 입고 조각배를 타기 위해 산책로를 따라 내려갔다.
다행히 바다까지 나가서 배를 타는 것이 아니라 넓은 바다로 나가기 전에 한쪽을 적절하게 막아 승선 준비를 할 수 있게 하고, 주의사항을 듣고 기다리다 도착된 조각배에 2명씩 승선하여 계곡 쪽으로 배를 저어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20분 정도의 코스였다.
짙은 초록물에 작은 조각배라 처음에는 불안했는데 주의사항을 듣고 나니, 안전요원들도 있고굵은 밧줄들이 물속에 있어 괜찮아 보였다. 라라와 베토가 먼저 타고 들어가고 나와 남편이 다음 조각배를 탔는데 의외로 베토가 나중에는 자기가 노도 젓겠다고 라라에게 말할 정도로 무서워하지 않고 잘 탔다.
반면에 나는 무서워하면서 살짝 긴장하고 남편도 처음에는 서툴러서 다른 배와 부딪칠 뻔도 했지만 곧 적응이 되어남편은 배를 저으며 노래까지 불렀다. 계곡 안에서 부르니 음향효과도 좋아 더 신이 나 부른다. 두 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아 간다~ 이 맑은 (봄) 가을 바다에 배 떠 나~아 간다~
라라와 함께 의젓하게 배를 타는 베토
그 덕에 배에서 내리는 걸 도와주는 사람들이 남편에게 성악가 할아버지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나는 20여분 타고 물 위에 있는 것인데도 핸드폰을 물속에 빠트릴까 걱정되어 사진 찍는 것도 조심스러워 라라와 베토의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다. 그러나 라라는 침착하게 우리가 조각배 타는 사진을 제법 여러 각도에서 많이 찍었다. 어린 베토를 데리고 조각배의 노를 저으면서도 사진을 찍어주는 라라의 침착성에 놀랐다.
조각배 승선 후 짙은 초록의 계곡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에서 베토와 작은 돌을 던지며 수제비를 뜨는 놀이
해변가에서 조약돌을 주워 베토와 할아버지가 물수제비를 뜨는 놀이를 하고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놀다가 '빵 명장집'에서 맛있는 빵과 커피를 먹으며 오늘 오후에 요트 승선을 할 수 있는지 라라가 전화를 했다. 다행히 오늘은 승선한다는 대답에 우리는 환호하며 라라의 아이디어로 기념품가게에 들러 주황색 귤모자를 3개 더 사서 4명이 똑같이 쓰고 사진을 찍으니 멋졌다.
시간이 넉넉하여 버스(520번)를 타고 중문 초등학교 앞에 내려 '가람 돌솥밥' 집에 들어갔다. 여기도 남편이 찾아놓은 맛집이었다. 라라 같이 젊은 여성들이 좋아할지는 모르지만. 며칠 전 민속촌에서 점심 먹고 계산할 때 해프닝이 있은 후 식사비나 그 밖의 경비는 우리가 모두 계산하고 라라는 요트 타는 경비며 기타 예약을 하는 비용을 내는 것으로 서로 합의를 해서 그 후에는 베토가 중재하는 해프닝은 없었다.
전복 돌솥밥, 전복 해물뚝배기, 막걸리를 시켜 먹고 서비스로 주는 귤까지 먹고서는 택시를 타고 요트 선착장으로 갔다. 이때는 요트를 타기에 앞서 식사를 하면서 막걸리를 곁들여 마신 시아버지 때문에 라라도 두 잔을 받아 마신 게 문제가 될 줄을 몰랐다.
시간 여유가 있어 선착장 근처의 공원에서 똑같은 주황색 귤모자를 쓰고 재미있는 포즈의 사진도 찍으며 놀다가 드디어 승선을 했다. 시원한 바람과 파도를 가르며 바다에서 요트를 타니 베토도 우리도 모두 신이 났다.
처음에는 선원들이 사진 찍어준다고 배 난간으로 나오라고 할 때는 다리가 떨려서 간신히 나가 서지도 못하고 앉아서 사진을 찍었었다. 남편은 요트가 잠시 멈춰 있으면서 낚시할 때도 무서워서 긴장했는데 나중에 배가 요트장으로 돌아올 무렵에는 배에 완전히 적응이 되어 신나게 즐겼다.
요트승선을 기다리며 공원에서 라라와 베토의 즐거운 포즈놀이
낚시하느라 요트가 멈춰있는 곳이 멀미가 많이 나는 곳이라고 멀미 조심하라고 했는데 낮에 먹은 막걸리 탓인지 라라가 뱃멀미가 와서 화장실로 뛰어가려다 갑판에서 토를 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라라가 얼굴이 노랗게 되어 핏기가 없는데도 미안해서 휴지를 꺼내 닦으려고 하니 선원들이 친절하게 자신들이 치울 테니 편히 배에 기대어 쉬라고 도와준다. 베토도 엄마가 힘든 걸 보더니 그동안 그렇게 신났던 모습은 간데없이 걱정하는 얼굴이 되어 라라 곁에 가서 함께 앉아 엄마 손을 잡아준다. 기특한 녀석.
즐거운 요트여행을 계획하고 조금 전까지도 함께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사진을 찍고 놀다가, 노란 얼굴빛으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쪽 갑판에 앉아 울렁이는 속을 다스리고 있는 라라의 모습이 안쓰럽다. 거기에 베토까지 기죽어 있으니 나도 즐겁지가 않다.
더구나 시아버지 술 친구 해주느라 막걸리를 마신 게 문제 된 것 같아 미안하고 속상했다. 그 와중에도 물고기를 낚지는 못했지만 낚싯대를 잡고 흔들리는 배에 서 있는 자세가 안정되자 무한히 기분 좋은 남편은 그저 싱글벙글이다.
안정적인 자세로 낚싯대를 잡고 있는 기분 좋은 사람
선착장에 돌아와 요트에서 내리자 남편이 가스명수와 이온음료수를 사 와서 라라를 먹게 했다. 휴게실에 편하게 누워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라라가 누워 있는 동안 베토와 나는 다리가 많이 달린 납작한 황갈색의 '갯강구'가 돌아다니는 게 신기해서 관찰하며 놀았다. 엄마걱정으로 풀이 죽어있는 베토를 즐겁게 하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이었다.
다행히 약을 먹고 누워서 쉬던 라라도 얼굴빛이 좋아졌다. 엄마를 걱정하는 베토의 표정도 다시 환해져서 모두들 가벼운 마음으로 공원으로 올라오니 때 맞추어 택시가 들어왔다. 바다 저편으로 석양이 물들기 시작하는 것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가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