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중 아이들이 묻는다.
'떨어질까 봐 무서워요'
"안 무서워지는 방법 있는데, 알려줄까?"
'네!'
"떨어지면 돼."
'?????'
다소 격렬히 말하자면,
전두엽이 녹는다는 표현을 쓴다.
조금 순화해서는
적응의 과정이다.
두려움 같은 감정이 느껴지는 대신
행동으로 반복하도록 만든다.
떨어지고, 무섭다.
아프고, 당황스럽다.
눈물이 나고 손이 떨린다.
겁이 나고 몸이 안 움직인다.
진정이 되는 것도 같다.
팔을 움직이고, 걸어본다.
다치지 않은 것 같다.
다시 타볼까.
단순화시킨다.
떨어진다 -> 안 다쳤다 -> 탄다
나는 내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느끼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다치기도 하고, 트라우마도 있었기에.
다만, 그때의 마음은 전하고 싶다.
허우적 대던 내가 다시 일어난 마음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아이들은 당황한다.
'무서운데 떨어져요?'
"응, 선생님은 100번 넘게 떨어졌어.
근데 지금 어떨까. 무서워서 말을 안 탈까, 잘 탈까?"
표현은 이렇지만 나는 레슨의 모든 순간
아이들의 안전에 집착한다.
내가 느낀 고통은 전해질 필요가 없기에.
그를 바탕으로 안전하고, 잘 알려주기 위해.
그리고 전달해야 할 마음을
다시금 정리한다.
두려움은 느껴본 사람만 이해한다.
고로 그 누구도 그 사람의 두려움을 알 수 없다.
내가 그 마음 알지.
나도 그랬어. 제일 잘 알아.
글쎄, 난 아니라고 본다.
본인이 아닌 이상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극복의 과정은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다.
질문하는 과정이기에.
수는 달라도, 답은 제각기여도.
결국 극복하고자 하는 목표는 같기에.
간단하게 표현해 보겠다.
두려움은 노출되어야 한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회도, 의지도 생겨난다.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말이 무서웠다.
그래서 타는 대신 끌어보기를 택했다.
언제든 나를 해칠 수 있는 존재가
내 옆에서 위협적으로 걷고 있다.
2m 라고 생각했던 나의 거리가
20cm 로 좁혀졌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상상해 보자.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내 옆에 두고
밀어내지도 못하는 상황을 유지하는 것.
정말 끔찍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달라진다.
두려움을 곁에 두고 있을 때,
달라도 함께 걸어볼 때.
해보았다면 공감할 것이고,
아직이라면 용기 내보자.
강요할 수 없는 일이다.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두려움은 노출되어야만 한다.
나의 마지노선이 2m 라면
10cm, 아니 1cm 씩 좁혀보자.
말을 타는 것이 두렵다?
괜찮다. 타지 않은 채, 곁에 있으려 노력하면 된다.
두려움에 노출된 상황은 아주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우리의 몸은 불편함도 적응한다.
보다 나의 몸을, 본능을
믿어보기를 바란다.
몸은 감정을 다스리고,
감정은 몸을 다스린다.
감정이 어렵다면, 몸에게 기대 보자.
결국, 몸이 나의 감정에게 호소할 것이다.
그저 작은 이야기면 된다.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